10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SK그룹은 비용 절감과 자산 유동화, 비주력 계열사 처분 등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됐다. 경영 효율화를 꾀하고 현금을 확보해 이른바 'BBC'로 불리는 배터리·바이오·반도체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SK그룹은 삼성·현대자동차·LG를 포함한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많은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말 기준 SK가 거느린 소속 회사는 198개에 이른다. 앞선 2020년(148개)보다 50개나 늘어났다. 이 기간 각각 재계 1·3위인 삼성(59→63개), 현대차(53→60개)와 비교해도 눈에 띄게 많다. 그만큼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방대해진 계열사 수와 달리 순익으로 남기는 돈은 적어졌다. 매출에서 각종 영업비용과 법인세 등을 제외한 당기순이익은 2021년 18조4059억원에서 2022년 11조1004억원으로 급감했다. 공급망 불안으로 인한 비용 증가 요인이 있었지만 순이익 감소는 사세가 커진 데 따른 재무적 피로감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주요 현금 창출원인 반도체와 정유가 힘을 쓰지 못하면서 경고음은 더 커졌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4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총 9조7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SK이노베이션은 국제유가 하락과 화학 제품 수요 감소, 자회사 SK온 흑자 전환 지연 영향으로 2023년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3조9989억원) 대비 1조6000억원가량 줄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SK그룹 차입금은 2021년 약 86조원에서 2022년 말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가 지난해 상반기에는 120조원에 다다랐다. 올해 안에 갚아야 할 부채가 60조원 수준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SK하이닉스는 인텔로부터 솔리다임을 인수한 대금 90억 달러(약 11조원) 중 잔금인 20억 달러(2조6400억원)를 내년 말 치러야 한다. 그간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신용을 토대로 자금을 조달한 SK온은 홀로서기에 성공해야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성장세 둔화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최태원 회장은 2016년 6월 그룹 확대경영회의 이후 7년 만인 지난해 10월 '서든 데스(돌연사)'를 다시 언급했다. 연말 인사·조직개편의 향배는 물론 올해 그룹 차원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이었다.
실제 최근 한 달여 동안 쏟아진 조치는 비상 경영에 버금가는 내용이었다. 최 회장이 "과잉·중복 투자는 없었는지 점검하라"는 취지로 언급한 직후 투자와 관련한 기능을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지주사인 SK㈜로 옮겼다. 또한 두 조직을 포함해 핵심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까지 팀 조직과 팀장급 인력을 최대 20% 감축하기로 했다. 정보통신기술(ICT) 부문 중간지주사 SK스퀘어는 11번가 매각을 추진한다. 화학·소재 회사인 SKC는 폴리우레탄 원료 회사 SK피유코어를 4000억원에 매각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 본격화 할 경영 효율화는 최태원 회장이 직접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그룹 2인자 자리로 불리는 수펙스협의회 의장을 최 회장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맡게 됐다. SK㈜ 대표이사엔 장용호 사장이 임명됐다. 한 명은 능력이 검증된 오너 일가, 다른 한 명은 투자 전문가로 최 회장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다.
향후 최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연임하며 대외 활동을 병행하더라도 지근거리에 있는 두 사람을 통해 관련 사안을 챙길 수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반도체 경기 반등 효과가 나타고 SK온이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위기를 조기에 진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