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벌써 5곳의 건설사가 부도났다. 폐업은 수백 건에 이른다. 건설업체들이 계속해 쓰러지는 와중에 국내 건설사 10개 중 8곳은 대출이자 내기도 힘든 상황이다. 업계는 총선이 끝나는 오는 4월, 건설사가 대거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이란 흉흉한 말까지 나돈다. '4월 위기설'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21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14일까지 부도난 건설업는 5곳에 이른다. 전년 같은 기간(2곳)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2019년(10곳) 이후로 최대치다.
이번에 부도난 곳은 모두 지역을 거점으로 한 전문건설사로 △광주 1곳 △울산 1곳 △경북 1곳 △경남 1곳 △제주 1곳 등이다.
건설업 등록 면허를 자진 반납해 폐업한 건설사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올해 1월 1일부터 이달 18일까지 폐업 신고한 종합건설사는 64곳, 전문건설사는 501곳으로 565곳에 달한다.
급기야 건설사 10개 중 8곳은 번 돈으로 대출한 이자도 갚기 어려울 정도로 경영 악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조사도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 500대 건설기업 자금사정 조사(102개사 응답)'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응답 기업의 76.4%는 현재 기준금리 수준(3.50%)에서 이미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었다고 답했다. 아직 여유가 있다고 답한 기업은 17.7%에 그쳤다.
최근 자금 사정을 묻는 문항은 '평년과 비슷하다(43.1%)'의 응답률이 가장 높았지만, '곤란을 겪고 있다'의 응답률도 38.5%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양호' 응답률(18.6%)의 두 배다.
오는 하반기 자금 사정 전망도 응답 기업 셋 중 한 곳인 33.4%가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응답기업의 92.1%는 올해 하반기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현재와 비슷하거나(65.7%), 더 증가(26.4%)할 것으로 예측했다. 자금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는 부문은 '협력업체 공사대금 지급(32.4%)'이 가장 많았고, '선투자 사업 추진(17.6%)', '원자재·장비 구매(16.7%)' 등의 순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건설업 위기가 본격화하면서 건설사들이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올 4월 총선 이후 중견·중소업체들이 무더기로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4월 위기설'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구 지역에 미분양 물량을 쌓아 놓은 시공능력평가 32위 신세계건설이 거론되는 후보 중 하나다. 이 업체는 2022년 11월 일반분양한 대구 수성구 빌리브 헤리티지 아파트 146가구 중 25가구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준공 후 미분양' 물량으로 남겼다. 최근 이 물량을 공매로 넘겼지만 3차례 전량 유찰되며 유동성 확보에 실패했다.
신세계건설은 이달 내 부채비율을 400%대까지 낮춘다는 계획이다.
신세계건설 관계자는 "연초 회사채 프로그램과 신세계영랑호리조트의 흡수합병을 통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했다"며 "주요 사업장의 만기 연장 협의도 대부분 완료한 상태이며, 우량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실적 개선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시공능력평가 99위인 한국건설은 최근 광주 신안동(1월 31일)과 궁동(2월 6일) 오피스텔 현장에서 보증사고를 연달아 일으켰다. 두 현장은 모두 예정공정률에 못 미친 상태로 한국건설이 사업포기각서를 제출해 보증사고로 이어진 경우다. 한국건설은 이 외 광주의 다른 2개 현장에서도 중도금 대출 이자를 납부하지 못한 상태라 보증사고가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 밖에도 건설사의 법정관리행은 올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역 건설사의 자금난을 키운 미분양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5만7925가구 중 공사가 끝난 뒤에도 분양되지 못하고 남은 '악성 미분양' 매물이 1만465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해 연초 7546가구 대비 38% 증가한 수치다.
특히 미분양 물량이 몰려 있는 대구에서는 악성 미분양으로 인해 관련 물량 전량이 공매로 이어지는 사례가 나오는 등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자체 부채 해결이 어려운 건설사들이 적잖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버티는 것도 한계 상태에 다다른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꽤 있다"면서 "실제 4월 위기설이 현실화할 경우,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업체 하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연계된 하도급과 재하도급 등 서로 얽혀있는 업체들까지 포함하면 업계 전반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경제적 타격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가운데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관내 공공공사의 발주물량 확대 및 조기 시행, 건설공사 지역제한입찰 대상 한도 확대 등의 규제 완화 등 다양한 지원책을 벌여 지역 건설사 살리기에 나섰다. 참가업체의 유동성 지원을 늘리고, 관련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지방 건설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자금 조달 형편이 좋지 못한 상황이다"며 "여기에 시멘트, 철근 등 원자재 가격도 너무 많이 올라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 자금 조달 지원방안 등 각종 대책을 발표했지만, 지방 건설사들의 체감도가 높진 않은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