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모친인 이명희 그룹 총괄회장이 총수로서 일선을 지키고 있지만 정 회장의 책임은 이전보다 커졌다. 쿠팡과 중국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신생 '유통 공룡'의 기세가 매서운 상황에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아서다. 유통업계는 정용진 회장이 어떤 승부수를 띄울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건설·SSG·지마켓에 잠식당한 당기순이익
정 회장이 이끄는 이마트는 최근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29조4772억원으로 쿠팡(31조8298억원)에 밀렸고 주가는 5년 전과 비교해 반토막이 났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같은 해 이마트는 당기순손실을 낸 종속회사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더 많았다. 종속회사 중 당기순손실이 1000억원 이상인 곳은 신세계건설(-1585억원), SSG닷컴(-1042억원), 에메랄드SPV(-1512억원)였다.
이들 세 회사는 전년도(2022년)에도 성적이 좋지 못했다. 신세계건설(-142억원), SSG닷컴(-1228억원), 에메랄드SPV(-830억원) 모두 당기순이익이 적자였다. 신세계건설이 손실 폭을 키운 원인으로는 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이 지목됐다. 본업인 유통 분야의 연이은 부진은 신세계그룹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신세계그룹은 앞서 본업인 오프라인을 토대로 온라인을 결합한 신세계만의 세계관을 구축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러한 전략은 '신세계 유니버스'로 명명됐다. 지난 2021년 1월부터 7월까지 평균 2개월이 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총 4건에 이르는 인수합병(M&A)을 단행하자 유통업계에서 붙인 표현이다.
릴레이 M&A를 두고 일각에서는 무리한 투자가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신세계그룹은 당시 이베이코리아(현재 지마켓)를 약 3조5000억원에 사들이는가 하면 스타벅스코리아 지분(17.5%)을 4700억원에 추가 인수했다. 이미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현재 SSG랜더스)와 여성 전문 패션 플랫폼 W컨셉을 인수하느라 총 4000억원을 쓴 상태였다. 모두 합치면 4조원이 넘는다.
지마켓이 신세계그룹에 인수된 뒤 적자로 돌아서며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이는 지분 80.01%를 확보한 에메랄드SPV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3분기 무렵까지 지마켓 인수를 놓고 "독이 됐다"거나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온·오프라인 시너지 낼까…수익성 개선 급선무
회의적인 시선에도 신세계그룹은 지마켓에 투자를 지속했다. 오프라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약한 온라인 경쟁력을 키우려면 대형 업체 인수가 필요했다는 이유다. 지마켓 적자는 이전 소유주인 미국 이베이가 매각을 염두에 두고 몸값을 높이기 위해 비용 절감에 집중하면서 투자는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향후 인수 효과를 내려면 인수 초기 자금 투입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신세계그룹에게 지마켓은 신세계 유니버스를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하는 교두보다. 정 회장은 2022년 신년사에서 '신세계 유니버스'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저녁엔 이마트24에서 맥주를 마시고, 주말엔 SSG랜더스필드에 가서 야구를 보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강력한 오프라인 인프라를 온라인과 연계해 통합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대대적인 M&A에 이어 신세계 유니버스 전략을 공식화한 신세계그룹은 2022년 6월 "5년간 20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오프라인 유통 사업 확대에 11조원, 자산 개발에 4조원, 온라인 비즈니스 확대에 3조원, 신사업 발굴에 2조원을 각각 쏟아붓는 내용이었다. 오프라인에 비중을 싣되 온라인 사업 강화를 위한 물류센터 등 토대 확장에 나선다는 게 핵심이다.
의지는 확고하다.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 수원'이 지난 1월 문을 열었고 보름도 안 돼 100만명이 이곳을 다녀간 것으로 전해졌다. 오는 2026년 경남 창원에 개장 예정인 스타필드 창원은 시공사 선정이 늦어지며 공사 일정이 미뤄지고 있지만 신세계그룹은 어떻게든 완공하겠다는 방침이다. 인천에는 돔 야구장과 호텔, 쇼핑 시설을 결합한 '스타필드 청라'가 건설 중이다.
정 회장으로서는 투자 재원이 될 매출을 끌어올리고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 이마트는 올해 연결 매출 목표치를 30조3000억원으로 잡았다. 지난해보다 3%가 채 안 되는 성장률로 상당히 보수적이다. 여기에 회장 승진을 계기로 사내이사를 맡는 등 책임 경영 요구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 회장은 2013년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