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얼마 전 부친 제사를 지낸 회사원 박모씨(42‧서울 도봉구), 제사상에 사과와 배가 꼭 올라가야 하지만 사과, 배 가격이 역대급 고공행진 중이라 고민 끝에 쿠팡에서 사과‧배가 각각 1개씩 들어간 2만원짜리 과일세트를 구매했다. 과일이라곤 사과 한 알, 배 하나가 올라간 제사상이었지만 박씨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니 아버지 여태 드신 것 중 가장 비싼 사과와 배를 드셨구나.”
전통시장에서 판매되는 후지 사과는 어지간하면 개당 5000원, 특상품은 1만원 안팎을 호가한다. 이것은 지난해 봄 과수 개화 시기에 발생한 이상저온 현상에서 기인한 과일 작황 부진이 주원인이다. 농촌 고령화에 따른 과수 재배면적 축소도 한몫 거들었다.
지난 여름 사상 초유의 폭염을 온몸으로 겪어냈더니 이번에는 봄철 이상저온이란 기상이변의 결과를 비싼 과일값으로 치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올봄도 과수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있어 과일 작황 전망이 좋지 않다. 이에 따라 과일값 고공행진이 올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18일 올봄 과일나무의 꽃 피는 시기가 평년보다 최대 10일 이상 빨라질 것으로 분석됐다며 ‘과수생육품질관리시스템’을 활용해 이상기상에 철저히 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과수생육품질관리시스템은 사과, 배, 복숭아, 포도, 감귤 등 주요 과수의 지역별 생육 정보와 품질 정보, 이상기상 정보, 재해예방 관리 기술, 병해충 발생 정보를 한 곳에서 제공하며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운영하고 있다.
농진청이 배, 복숭아, 사과 가운데 대표 품종의 개화 시기를 자체 개발한 생물계절 예측 모델을 통해 분석한 결과 배꽃이 활짝 피는 시기는 △울산 4월 2일 △전남 나주 4월 6일 △충남 천안 4월 11일경으로 평년보다 최대 9일 빠르게 나타났다. 복숭아꽃이 활짝 피는 시기는 △경북 청도 4월 2~4일 △전북 전주 4월 5~7일 △경기 이천 4월 15~17일 △강원 춘천 4월 19~21일경으로 평년보다 최대 12일 빠르게 나타났다.
또한 사과꽃이 활짝 피는 시기는 △경남 거창 4월 9∼12일 △경북 군위·전북장수 4월 10∼13일 △경북 영주·충북 충주 4월 12∼16일 △경북 청송 4월 16∼18일로 평년보다 최대 11일 빠를 것으로 예측됐다. 3월 기온이 높아 과일나무 꽃피는 시기가 빨라지면 4월 초 저온에 쉽게 노출돼 피해를 보기 쉽다.
기후변화가 위기만은 아니다. ‘기회’가 되는 측면도 있다. 농진청은 지난달 14일 기후변화로 아열대 작물 재배지가 북상하고 있는 가운데 아열대 과일 재배에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지역별, 작물별 등유 소요량 지도를 작성해 난방비 부담을 줄이면서 경제적으로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을 제시했다.
또한 등유 소요량을 토대로 탄소 배출량을 산정하고 이를 종합해 노란색부터 빨간색까지 9단계로 구분한 작물별 등유 소요량 지도를 만들었다. 등유 소요량 지도에 따르면, 아열대 작물의 재배 권장 지역은 등유 소유량 1만1900리터(L) 이하, 탄소 배출량 30t 이하인 곳이 해당한다.
연구진은 아열대 과일을 재배 온도에 따라 고온성, 중온성, 저온성으로 분류하고 중온성인 ‘아열대성 망고’는 전남 해남지역 이하에서 재배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패션푸르트, 파파야, 망고, 용과 같은 아열대 과일은 온난화와 수입 증가에 따라 새로운 작목으로 인식돼 재배면적이 늘고 있다. 국내 아열대 과일 재배면적은 지난 2017년 109.5헥타르(ha)에서 2022년에는 188.8ha로 1.7배 상승했다.
그러나 이들 작물은 작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생육 온도가 다른 작물보다 높은 편이어서 농가 경영비 가운데 난방비 비중이 큰 편이다. 난방비가 망고는 경영비의 55%, 파파야는 6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망고의 경우 2월 중순부터 20℃ 이상 올려야 개화와 수분 수정이 원활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김대현 소장은 “새로운 소득 작물로 아열대 과일에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농가에서 이번 등유 소요량 지도를 참조하면 난방비가 적게 들고 정부의 탄소 저감 정책에도 부합되며, 경제성 높은 작물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