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범야권' 세력이 200석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면서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를 막을 견제 장치는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개표 결과 총 의석 300석 중 여당인 국민의힘과 비례 위성 정당인 국민의미래는 불과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은 175석을 확보해 단독 과반이 됐다. 여기에 12석을 얻은 조국혁신당을 합치면 187석에 이른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알려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이다. 이 법은 노조가 불법 파업을 벌여 기업에 손해를 끼치더라도 해당 기업이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어렵게 했다. 사용자 범위를 넓혀 하청 노조가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거나 쟁의행위를 할 수도 있다.
경제계는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방어권을 무력화한다며 노란봉투법 입법을 반대해 왔다. '불법 파업 조장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지난해 21대 국회에서 야당이 단독으로 처리했으나 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거부권)해 결국 통과가 무산, 폐기됐다.
거대 야당은 최대 190석(조국혁신당·진보당 포함)에 이르는 의석 수를 앞세워 노란봉투법 입법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해당 법안 통과를 당론으로 채택해 의결을 밀어붙인다면 국민의힘으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경제계가 요구해 온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적용 유예도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반대로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을 유예하는 방안이 실현되지 못했다.
중대재해법은 산재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책임 여하를 따져 최고경영자까지 처벌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난 2022년 1월 50인 이상 사업장에 시행된 이후 올해부터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됐다. 최근에는 울산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 업체 대표가 징역 2년을 선고받는 등 점차 형량이 높아지고 있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위원장을 국민의힘이 챙긴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상임위원장은 회의를 열고 중단할 뿐 아니라 해산할 수 있다. 안건을 정하고 소속 의원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도 위원장 권한이다.
국민의힘이 환노위원장을 확보, 견제에 나서더라도 주도권은 민주당이 쥘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원내 3당으로 도약한 조국당과 힘을 합치면 노란봉투법 등 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본회의에 바로 상정할 수 있다. 패스트트랙 법안 지정에는 재적의원 5분의3인 180석 이상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의지를 보여 온 노동개혁은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노동개혁 의제를 다룰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총선을 엿새 앞둔 지난 4일 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총선 이후로 일정이 미뤄졌다. 노동계가 급작스럽게 불참을 통보하며 연기를 요청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경영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경사노위 회의 일정과 관련해 들은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