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강서구 한 대형마트의 가전 코너에 놓인 중국산 샤오미 TV를 두고 매장 관계자가 한 말이다. 샤오미 55인치 고화질 TV의 가격은 39만9000원, 채 40만원이 되지 않았다. 주변에 전시된 동일한 크기의 한국 제품은 120만원가량에 팔리고 있었다. 성능·품질 차이를 고려해도 3배나 비싼 가격이다.
샤오미 TV를 지켜보던 방문객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김모씨(29, 서울 관악구)는 "가격이 워낙 저렴하니 지나가다 보고 있었다"라며 "지금은 LG전자 TV를 쓰고 있지만 다음에 살 땐 샤오미 TV와 충분히 비교해 보고 구매할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산에 대한 편견을 염두에 두고 '품질을 걱정하지 않냐'는 질문에 "TV는 문제없이 잘만 나오면 돼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매장 관계자와 방문객 반응이 보여주듯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TV의 공세가 '가전 왕국' 한국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업계에선 한국이 원조 가전 왕국이라 불리던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저가 공세를 피해 고가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에 주력하는 사이 중국에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지난해 세계 TV 출하량을 공개하며 상위 5개 업체 중 3개가 중국 업체라고 밝혔다. 점유율 16%로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에 이어 하이센스와 TCL이 각각 11%로 뒤를 이었다. LG전자는 점유율 10%로 중국 업체에 2위 자리를 내준 데다 샤오미(5%)의 추격마저 받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TV 출하량이 2022년 대비 5% 감소한 반면 하이센스와 TCL은 각각 4%, 8% 상승하며 점유율을 늘렸다. OLED 등 프리미엄 TV 시장에선 여전히 한국의 두 회사 합계가 65%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 제조사도 22%로 늘어났다.
압도적 세계 1등에서 서서히 점유율을 빼앗기는 건 과거 일본과 유사한 양상이다. 일본은 1980년대까지 소니의 워크맨, 파나소닉의 TV 등을 통해 세계 가전 시장을 접수했다. 국내에선 조지루시의 일명 '코끼리 밥솥'이 일본 여행 때 필수 구매품으로 통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한국 가전 업계가 일본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결국 가전 왕국의 자리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 밀린 일본 가전업계의 결말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소니는 워크맨을 분사시켰고 파나소닉은 TV용 패널 제조 사업에서 철수했다. 조지루시는 한국에 중저가 시장을 내어준 뒤 자국 내 고가 시장만 지키고 있다.
중국산 가전이 한국 시장 점령에 나서면서 한국 업체들은 일본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인공지능(AI)과 TV 운영체제(OS) 등 소프트웨어 역량에 집중하며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AI 프로세서로 화질을 개선하는 '업스케일링'이나 TV OS로 다양한 무료 콘텐츠를 제공하며 차별점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디스플레이 기술력이 급격하게 성장한 것은 맞지만 아직 TV의 하드웨어 영역에 국한돼 있다"며 "단기간에 따라오기 어려운 소프트웨어 역량을 길러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