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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시청역 사고 원인 둘러싼 '갑론을박'…"차량 결함 증명 어려울 것"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임효진·박연수 기자
2024-07-04 06:00:00

'제네시스 G80' 가해 운전자 차량 '급발진' 주장

전문가들 급발진 가능성 두고 의견 엇갈려

국과수 EDR 결과도 "차량 결함 증명 어려울 것"

'차량 전자화'로 시스템 결함 늘고 급발진 이슈

제조사 '급발진 책임' 없나··· 안전센서 제기능 못해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역주행하면서 15명의 사상자를 낸 현대동차 제네시스 G80 차량 사고 후 모습 사진아주경제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역주행하면서 15명의 사상자를 낸 현대동차 '제네시스 G80' 차량 사고 후 모습 [사진=아주경제]
[이코노믹데일리]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15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사고 원인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9시 27분 A씨(68)가 운전하던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G80’ 차량이 일방통행인 세종대로 4차선 도로를 역주행하면서 차량 두 대와 잇달아 추돌한 뒤 길목 인도로 돌진하며 보행자들을 덮쳤다. 사고 직후 피의자 A씨는 차량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목격자는 물론 전문가들조차 사고 원인을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차량정밀 감식을 의뢰한 가운데 무엇을 밝혀야 하고 반복되는 '급발진'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생각을 들었다.
 
◆'브레이크등' 급발진 판단 근거 되나  
 
사고 상황을 목격한 대다수 사람들은 가해 차량의 브레이크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A씨 주장을 일축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차량 급발진을 100% 배제할 순 없지만 운전자 실수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근거로 브레이크등이 들어온 뒤 운전자가 차를 멈춰 세우는 영상을 제시했다.
 
브레이크등 점등 여부로 급발진 가능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반박도 나왔다.

박병일 자동차 정비 명장은 “예전엔 브레이크 밟으면 바로 브레이크등에 불이 들어왔지만 요즘은 ECU(자동차 전자 제어 장치)를 거친 뒤 브레이크등이 켜진다”며 “만약 ECU가 고장 났다면 브레이크를 밟아도 등에 불이 안 들어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급발진 여부, EDR만 알고 있나 

브레이크등 점멸, 굉음 등 급발진 여부를 판단할 만한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사고 원인을 밝힐 결정적 역할을 할 건 사고기록장치(EDR)가 될 것으로 보인다. EDR은 차량 운행 중 발생하는 충돌 전후 차량의 속도 변화나 브레이크 작동 여부 등 데이터를 기록하는 장치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보를 제공하면서 ‘자동차 블랙박스’로 불린다.

경찰은 지난 2일 브리핑에서 "국과수 EDR 분석에 걸리는 시간은 1개월에서 2개월"이라고 전했다.
 
EDR 감식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EDR은 아무나 읽을 수도, 변조할 수도 없다. 감식 결과가 나와야 급발진 가능성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DR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필수 교수는 "고장난 차량의 EDR을 믿는 건 말이 안 된다. 영상 블랙박스와 EDR을 함께 분석해야 기계 결함을 밝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차량의 전자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EDR이 급발진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항구 JIAT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엔지니어들조차 차량용 소프트웨어 결함이라는 추측만 할 뿐 정확한 원인은 알지 못한다”며 “기계적 결함은 뜯어보면 알 수 있는데 소프트웨어는 열어봐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박병일 자동차 정비 명장도 “급발진 사고 차량 중 고가의 2000CC 이상 대형차가 많다. 컴퓨터나 센서가 더 많은 차량에서 사고가 난다는 의미”라고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제공한 데이터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자동차리콜센터에 접수된 급발진 의심 신고 수는 2010년부터 지난 5월까지 총 793건이지만 급발진을 인정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급발진' 이슈, 제조사 책임은 없나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 IIHS 충돌평가서 최고로 안전한 차 선정'이란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제네시스 G80·G80 전동화 모델이 최고 수준의 충돌 안전 및 예방 성능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근거로 제시한 기능 중 하나가 '전방 충돌방지 보조(FCA)'였다. FCA는 전방의 사물과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잡아 제동을 걸어주는 전자식 안전장치다.

FCA가 해당 차량에 탑재돼 있었는지, 탑재됐다면 정상 작동했는지도 수사 당국이 밝혀야 할 대목이다.
G80은 생산 시점에 따라 FCA를 기본으로 탑재하거나 옵션 항목에 넣었다. 여기에 FCA는 운전자를 '보조'하는 개념인 만큼 60~70㎞ 속도 이하일 때만 작동한다. 

일각에선 영상 속 가해 차량이 110㎞ 이상 달렸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병일 명장은 "EDR과 영상에 찍힌 주변 차량과의 속도 등을 비교하는 등 면밀하게 봐야 한다"고 했고 경찰은 '점점 가속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 부분은 세심하게 수사해야 할 사안"이라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FCA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항구 원장은 “FCA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거나 운전자가 장치를 조작해 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박철완 교수는 "FCA가 악셀을 오버라이드(무효화)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차량 제조사들이 페달용 블랙박스 설치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들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은 제조사에 페달용 블랙박스 설치 옵션 추가를 권고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업계는 가격 등을 이유로 옵션 판매에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박병일 명장은 "급발진이 없다고 자신한다면 블랙박스 설치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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