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넷플릭스의 인기 요리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라는 형식을 빌려 흑수저와 백수저로 상징되는 계급 간 대결을 그려내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 규모와 화려한 연출 덕분에 수많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맛"에만 집중한 결과로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요리라는 주제는 맛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과 서사까지 아우르는 복합적인 예술인데 이 점에서 '흑백요리사'는 아쉬움을 남긴다는 지적이다.
◆ 요리의 표현력 언어로 재해석해야
요리 경연 프로그램는 단순히 음식을 만들고 그 맛을 평가받는 과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요리를 설명하고 이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요리의 또 다른 핵심 요소다. 하지만 '흑백요리사'는 그 과정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요리 평론가들은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이 음식 맛을 표현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고 지적한다. 한 평론가는 "심사위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맛있다', '재료의 특성이 잘 살아 있다'와 같은 표현들은 맛의 복합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그마저도 '음'과 같은 추임새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음식의 맛을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들이 존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언어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요리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우리의 음식 표현 언어가 너무 단순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요리를 평가하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빈약하다면 시청자들은 단순한 결과만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결국 요리의 미묘한 차이와 감동이 언어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시청자들은 그저 심사위원의 '한 입 평가'에 의존하게 된다.
프로그램의 참가자들 또한 요리를 설명하거나 평가할 때 마찬가지로 언어적 한계를 드러낸다. 요리 대결이 단순한 경쟁을 넘어 말로 이루어지는 '언어 전쟁'의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특히 한국 요리사들이 사용한 표현들은 지나치게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느낌을 준다. '잘근잘근 상대하겠다'라는 발언은 단순한 요리 경쟁을 넘어서는 공격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심사위원의 평가가 객관적인 맛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표현하는 언어는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종종 요리와 상관없는 공격적인 어휘로 채워져 있으며 이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요구되는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표현 대신 단순한 승부욕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한국 특유의 경쟁 문화와도 맞물리며 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본래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 흑백 요리사, 계급적 서사의 한계
또한 '흑백요리사'는 계급 대결이라는 서사적 요소를 내세우며 시청자들의 감정적 몰입을 유도했다. 흑수저와 백수저로 나뉜 요리사들이 요리 실력으로 계급을 뒤집는다는 스토리는 현실 사회에서 계층 간의 불평등과 관련된 화두를 자연스럽게 상기시킨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서사적 흡입력을 제공했으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가 너무 단순하게 그려졌다는 비판도 있다.
요리 대결의 본질은 단순히 '흑'과 '백'의 대결이 아니다. 백수저로 분류된 유명 요리사들이 반드시 특권층을 대표하지 않으며 흑수저로 분류된 도전자들이 모두 불운한 배경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저마다의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 배경을 통해 형성된 각자의 요리 철학이 프로그램 내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 요리라는 행위는 단순한 기술적 대결을 넘어서는 감정과 이야기, 문화적 맥락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흑백요리사'는 이러한 부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프로그램이 내세운 '공정한 판단'이라는 명제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시청자들은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공정한 평가 방식을 통해 심사위원들이 출연자의 명성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맛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그 공정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시각, 촉각, 청각 등의 다양한 감각 요소를 배제한 채 '한 입 평가'에만 집중한 결과 요리의 전반적인 완성도와 그 안에 담긴 스토리는 간과되었다.
특히 여성 요리사들의 활약이 지나치게 편집된 점, 그리고 요리 대결에서 지나치게 육식 위주의 요리만이 다뤄졌다는 점도 프로그램이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다양한 재료와 요리 방식이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구성되지 않은 점에서 프로그램의 편향성을 엿볼 수 있다.
◆ K-예능의 성공과 그 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백요리사'는 넷플릭스 비영어권 예능 프로그램 중 최초로 글로벌 1위를 차지하며 K-예능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한국 예능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음을 입증한 것이다. 프로그램 내 등장하는 출연자들의 레스토랑은 예약이 폭주하고 방송 직후 SNS에서 요리사들의 이름이 실시간으로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이 성공의 이면에는 글로벌 OTT 플랫폼에 의존하는 한국 콘텐츠 제작 환경의 한계도 존재한다.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플랫폼이 주도하는 제작 환경에서는 창작자들이 제작비나 권한 면에서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창의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흑백요리사'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예능 제작자들은 사실상 하청업체로 전락해 가고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있다.
결국 '흑백요리사'는 요리라는 예술을 단순히 경연과 승패로 축소시키면서 많은 중요한 요소들을 놓쳤다. 요리의 복합적인 감각적 경험과 이를 표현하는 언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서사적 가치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프로그램이 그려낸 화려한 대결의 이면에는 이러한 본질적인 질문들이 자리하고 있다. 만약 '흑백요리사'가 시즌 2를 기획한다면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여 더 깊이 있는 요리 예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