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랜딩기어’ 사고…기체 결함 가능성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같은 기종인 보잉 737-800의 랜딩기어 이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체결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랜딩기어는 비행 안전과 직결된 필수 장치로 안전한 이착륙을 보장하는 한편 비상 착륙 시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참사는 랜딩기어 3개가 모두 작동하지 않은 것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참사 바로 다음날인 지난 12월 30일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제주행 제주항공 7C101편은 이륙 직후 랜딩기어 이상이 발견되면서 회항했다. 해당 여객기 기종은 참사 여객기와 동일한 보잉 737-800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보잉 737-800의 랜딩기어 이상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이 같은 의혹은 더욱 확산되는 모양새다.
2024년 10월 인도 LCC 에어인디아 익스프레스 소속 보잉 737-800 기종 여객기가 이륙 직후 랜딩기어 문제로 이륙 2시간 30분 만에 복귀한 바 있다. 승객 150명 이상을 태우고 인도 티루치라팔리 공항을 출발한 이 여객기는 아랍에미리트 샤르자 공항으로 향하던 중 유압 시스템 고장으로 랜딩기어를 접을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자 결국 회항했다.
독일 LCC 투이 항공 소속 보잉 737-800 여객기도 2024년 7월 그리스 코프루 공항으로 향하던 중 이륙 직후 랜딩기어가 접히지 않는 문제를 겪으면서 출발지인 영국 맨체스터 공항으로 복귀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보잉 737-800 기종의 랜딩기어 이슈가 반복되면서 일본 언론은 항공 전문가들을 통해 기체 결함 문제의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새떼와 충돌해 두 개의 엔진이 고장난 것만으로 이번 같은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버드 스트라이크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랜딩기어 고장의 직접적인 원인인지 알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휘양 인하공업전문대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통계를 보면 2024년에도 버드 스트라이크가 몇 천건 발생했다. 아주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어서 버드 스트라이크 자체를 모든 원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정확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수많은 악재가 겹쳐 벌어진 사고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지·관리 역량 의문제기…국토부 전수조사
국내에서는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유지·관리·보수(MRO)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란 의혹이 주로 제기되고 있다. 오랜 기간 안전하게 운항된 보잉 737-800 자체의 결함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황경철 한국항공대 한국항공안전교육원 원장은 “해당 항공기는 안전성이 확인된 좋은 비행기다. 정비의 문제지 항공기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MRO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같은 풀서비스 캐리어(FSC)는 정비 인프라가 완벽한데 LCC는 자체 정비 조직이 있지만 완벽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도 지난 12월 29일(현지시간)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문제의 비행기는 매우 안전하고 좋은 안전 기록을 갖고 있다”며 “유지·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랜딩기어가) 전개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보잉 737-800 국내 전 기체에 대해 운용 상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지난 12월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항공기 운항 전후로 이뤄지는 점검과 정비 기록 등 여러 규정이 잘 준수되고 있는지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부가 수시로 점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전수 조사에서 문제가 발견되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정윤식 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정비 품질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도 “국토부 감독관이 수시로 점검하고 있어 정비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항공기 MRO 미비로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항공사들은 항공기가 출발하기 전에 안전 점검을 하는데 문제가 발견되면 비행기를 아예 띄우지 않기 때문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는 언제나 출발 전과 도착 후 상시 점검을 하고 있다”며 “(결함 여부를 확인해 주는) 계기판에 불이 하나라도 들어오면 항공사는 무조건 운항을 중단하게 돼 있다. 분명 작동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비행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항공업계 관계자도 “비행 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출발 전 무조건 (항공기에 문제가 없다는) 클리어가 돼야만 운항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들 공포 확산…노선 배분 배제될 수도
사고 원인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제주항공이 이번 참사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는 데는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했다. 제주항공에 따르면 참사 바로 다음날 반나절 동안 취소 건수만 약 6만8000건으로 집계됐다.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제주항공을 포함한 LCC는 앞으로 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2월 30일 김포공항에서 제주항공을 이용해 일본 오사카로 향한다는 이모씨(24세)는 “숙소를 예약해 놔서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가는데 불안하다. 혹시 몰라 비상구와 가장 가까운 쪽 좌석을 선택했다”며 “지금은 학생이라 LCC를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취업하고 돈이 생기면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을 이용해 제주도로 향하는 항공편을 기다리고 있던 김모씨(32세)는 “원래 LCC를 많이 이용했던 편인데 당장 지금부터 꺼리게 될 것 같다”며 “안전과 직결돼 있다보니 돈 조금 아끼자고 안전에 도박을 걸 수는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진에어로 제주도로 가는 한 승객도 “안전에 대한 불안을 느껴 앞으로 대한항공을 주로 이용할 것 같다”며 “올 1월에 LCC를 이용해 태국으로 여행을 가려던 계획도 취소했다. 주변에 친구들 중에 취소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미지 타격으로 제주항공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시장에 나오는 34개 노선 배분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안영태 극동대 항공학과 교수는 이번 “안전점검에서 문제가 발견된다면 국토부에서 노선을 배정할 때 제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노선 배분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사고 원인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휴먼 에러로 판결되면 책임을 부과할 수 있으나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에 가까운 사고로 조사되면 노선 배분과 관련해 패널티 성격의 제재를 할 가능성은 적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의혹들에 관계 없이 한동안 제주항공은 실추된 이미지 타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휘영 인하공업전문대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당연히 이용 수요에 대한 위축 심리가 작용해 중단기적으로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신뢰 회복에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최소 1년은 지나야할 것”이라며 “항공사 측에서 안전 관련 메뉴얼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