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25%, 중국산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관세의 무기화’를 미국이 실제 이행에 옮기면서 전세계는 글로벌 무역 전쟁의 시대에 접어들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런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서명식을 열었다. 4일부터 발효되는 이 조치는 ‘미국 경제 보호 및 펜타닐 유입 차단’이 목표다.
행정명령엔 보복 조항도 포함됐다. 캐나다, 멕시코, 중국이 미국 제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도 이에 맞서 관세를 추가로 인상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멕시코·중국을 넘어 유럽연합(EU)에도 비슷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추가 관세를 한 달 내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구리에 대한 관세도 부과하겠다고 언급했다.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해서도 관세를 검토 중이지만 구체적인 시행 시기와 세율은 공개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앞으로 10년간 4조6000억 달러에 달하는 감세 정책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캐나다·멕시코·중국, 강경 대응
미국의 관세인상 조치에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이 강경 대응에 나섰다. 캐나다는 플로리다산 오렌지 주스를 포함한 미국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유에 수출세를 부과해 미국의 유가 상승을 압박할 수 있는 조치도 고려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최대 103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지만, 우선 공청회를 거칠 계획이다.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쉰바움 대통령 역시 보복 관세를 경고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경제부 장관에게 멕시코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관세 및 비관세 조치를 포함, 플랜B를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며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 대응에 나섰다.
이에 앞서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경제부 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에 대한 질문에 "우리가 이길 것"이라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중국도 즉각적으로 반발하며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일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이 펜타닐 등 문제를 이유로 중국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며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행위로 중미 간 정상적인 경제·무역 협력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중국은 이 사안을 WTO에 제소할 것이며, 상응하는 반격 조치를 통해 자국의 권익을 단호히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더 이상 관세라는 위협적 수단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이며 양측이 평등하고 호혜적인 관계 속에서 솔직히 대화하고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신화통신은 이를 긴급 뉴스로 보도하며 "트럼프 정부의 무역 보호주의 정책은 국제사회와 미국 내에서도 광범위한 반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신화통신 산하 소셜미디어 계정 뉴탄친(牛彈琴)은 "이번 관세 조치는 단순한 시작일 가능성이 크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 겨냥하고 있는 대상은 동맹국 일본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 단기적 혼란 불가피··· 한국도 ‘비상등’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수입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에 일각에선 단기적인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세계적인 회계·컨설팅 그룹인 이와이(EY)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그렉 다코의 분석 모델에 따르면, 이 조치는 올해 미국의 성장률을 1.5%포인트 낮추고, 캐나다와 멕시코를 경기 침체로 몰아넣으며, 미국 내에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시키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됐다.
미국 주요 기업들을 대표하는 전국 외국무역위원회 회장 제이크 콜빈도 “이번 조치는 아보카도부터 에어컨,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의 가격 상승을 초래할 것이며, 미국과의 관계를 대화보다 갈등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관세 현실화 등으로 우리나라도 수출에 비상등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철강 등에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월 수출액은 491억2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10.3% 줄었다. 수출액은 앞서 2023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15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증가했으나, 지난달 큰 폭의 마이너스(-)로 전환하며 뒷걸음질했다.
지난달 주력 수출 품목 15개 중 반도체와 컴퓨터를 제외한 13개의 수출액이 일제히 줄어들었다. 자동차(-19.6%) 및 부품(-17.2%) 수출이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이고, 석유제품도 가격 하락 및 주요 업체 생산 시설의 화재 여파 등으로 29.8% 급감했다. 반면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는 8.1% 늘며 1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지역별로는 대중, 대미 수출이 각각 14.1%, 9.4% 줄며 지난해 12월 플러스(+)에서 지난달 마이너스(-)로 내려앉았다.
◆ 삼성·LG, 미국 현지 생산 강화로 돌파
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 강화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특히 자동차나 가전 같은 최종 제품은 현지에서 생산해 바로 판매하면 관세 부담이 많이 줄기 때문이다.
현재 멕시코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전과 TV 등의 공장을, 기아가 자동차 공장을 운영한다. 현대모비스와 현대트랜시스도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이다.
LG전자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생산하는 미국 테네시 공장에서 냉장고와 TV 등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세이프가드 발동을 계기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세탁기 공장 준공 일정을 앞당겨 현지 생산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해왔다.
캐나다는 북미 최대 핵심 광물 생산지다. 이 때문에 LG에너지솔루션,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등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이 활발하게 진출해왔다. 그동안 캐나다에서 생산한 배터리나 전기차는 미국으로 수출할 때 관세가 거의 붙지 않았는데, 앞으로 25% 관세가 부과되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의 주력 수출 상품인 반도체의 경우 추가 관세를 매기면 우리나라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