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IB) 분야의 '대부'로 불리는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이 '옵티머스 사태' 여파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이 환매중단 사태로 다수의 투자 피해자를 양산한 가운데 옵티머스 측으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불거져서다. 다만 옵티머스 사태를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등 사태 수습을 위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 반전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골칫거리 된 옵티머스 펀드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영채 사장은 1988년 대우증권에 입사하면서 금융투자업계에 발을 들였다. 대우증권 투자금융2담당 상무를 지낸 후 우리투자증권 투자금융(IB)사업부장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NH농협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 합병한 뒤에는 NH투자증권 투자금융사업부 대표와 부사장을 각각 역임했다.
정 사장은 투자금융 관련 분야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다. 'IB업계의 대부'라는 별칭도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실제 정 사장은 지난해 IB부문에서 전년 대비 21.32%의 성장률을 기록해 NH투자증권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 IB 수수료수익 가운데 인수주선 수수료수익도 2018년보다 72.1% 증가하는 등 괄목할 만한 실적으로 냈다.
투자금융부문에서도 인수합병(M&A), 인수·주선금융, 기업공개(IPO) 등에서 고른 성과를 냈고 자산관리(WM), 트레이딩, 법인영업 등 모든 사업부문을 고르게 성장시켰다.
견조한 실적에 정 사장의 입지는 탄탄해 보였다. 하지만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당시 옵티머스는 우량 공공기관의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는 거짓말로 펀드 상품을 팔았다. 실제로는 대부업체와 부실기업,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돌려막기로 수익을 냈다. 이 과정에서 옵티머스 펀드 전체 판매액의 84%인 4327억원을 NH투자증권이 팔았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태가 불거진 후, 정영채 사장의 책임론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정 사장이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정 사장은 즉각 근거 없는 의혹제기라며 반박했지만 이미 도덕성과 신뢰도가 크게 실추된 상태다.
정영채 사장은 지난해 4월 옵티머스운용 고문을 맡고 있던 김진훈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이 정 대표와 전화 통화를 한 뒤, 상품 담당 실무자에게 '접촉해 보라'는 메모를 남겼다. 정황상 직원에게 판매하라는 지시를 내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이외에도 정영제 전 옵티머스 대표는 지난해 3월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관한 대출 가능여부 문의 건으로 NH증권을 방문해 정영채 사장을 접견했고, 로비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IB 맏형' 신뢰도 생채기…감독당국 제재도 우려
증권업계에서는 정영채 사장에 대한 신뢰도가 이번 옵티머스 사태로 치명상을 입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NH투자증권을 이용하는 투자자 중에는 'IB 대부' 정영채 사장을 믿고 거래하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4000억원 규모의 금융사고를 낸 상품을 승인하고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진다면 투자자들의 이탈이 이어질 수 있다.
NH투자증권이 피해자들에게 투자원금에 따라 최저 30%에서 최고 70%까지 자금을 차등 지원하는 방안을 내세웠지만, 피해자들은 보상 방안에 반발하고 있다. 사후 정산이 없는 선지원이 아니라는 점과 지급률 차등 등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0일부터는 옵티머스 펀드 사태 피해 투자자들이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을 상대로 본격적인 단체 집회를 시작했다. 또 법무법인 3곳을 선임해 NH투자증권을 대상으로 집단소송을 진행할 것이란 계획도 밝혔다.
추후 이뤄질 감독당국의 제재도 부담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라임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사전 통보했다. 문책 경고 제재가 최종 확정되면 해당 CEO는 연임 및 3~5년간 금융권 취업을 제한된다. 관련업계에서는 정영채 사장이 금감원 제재를 피하기 어렵울 것으로 보고 있다. 라임 펀드 징계가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감독당국의 선례가 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라임펀드 관련 최종 징계수위가 뒤이어 불거진 옵티머스펀드, 팝펀딩 등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한 금융당국 제재의 기준점이 될 수도 있다"며 "만일 29일 감독당국이 징계안을 확정한다면 정 사장에게도 '제재 리스크'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적 개선·직접 고소 등 정상참작 가능성도
옵티머스 사태와는 별개로 올해 3분기 NH투자증권 실적은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NH투자증권의 3분기 매출(영업수익)은 1조7260억원, 순이익은 2396억원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97% 급증해 분기 기준 사상 최대를 달성했다.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5012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순이익(4764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정 사장에 대한 금융지주의 신뢰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성희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새로 선출됐을 당시 대부분 계열사 CEO들이 사표를 냈지만 정 사장은 성과를 인정받아 연임에 성공한 전례가 있다. 옵티머스 펀드에 대해 의혹을 발견하고, NH 측에서 직접 검찰에 고발했다는 점에서 정 사장에 대한 ‘정상참작’의 여지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정영채 사장이 분명 일부 신중하지 못했던 점은 있지만 문제를 인식하자마자 발빠르게 대응했다는 점에서 공‧과가 둘 다 있다"며 "일부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회사 실적도 좋아서 연임을 놓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