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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韓 추상 미술의 선구자' 박서보 “디지털 시대의 그림, 달라야 한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전성민 기자
2019-05-21 00:00:00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 오는 9월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박서보 화백.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벌거벗고 서 있는 기분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들을 다 드러냈기 때문이다. 때로는 숨겨두고 싶었던 세계까지 공개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가 매우 기쁘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88세의 고령인 박서보 화백은 뇌경색을 앓고 있지만 작품 이야기를 할 때는 어느 젊은이보다 열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예술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왜 선구자로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을 오는 9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지난 18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박서보의 삶과 작품세계를 한자리에 조망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에는 ‘현대인의 번민과 고통을 치유하는 예술’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묘법을 지속해 온 수행자 박서보 화백의 70여년 화업(畵業)이 담겨있다.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박서보는 그림을 통해 치유를 경험한다. 뇌경색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지만 하루에 10시간씩 그림을 그려 신작 2점을 완성했다. 물론 조수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박 화백은 신작 ‘묘법(描法)’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내가 절대로 팔지 않을거야. 1000만 달러를 준대도 안 팔아.”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를 들으니 거금을 줘도 ‘안 팔겠다’는 선언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박 화백은 “21세기 디지털 시대는 ‘스트레스 병동’과 같다”고 했다. 무차별 살인 등 많은 범죄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시대의 그림은 아날로그 시대의 그림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박서보 화백은 “아날로그 시대에는 작가들이 이미지, 자기 생각들을 캔버스에 쏟아냈다”며 “디지털 시대에는 그림이 스트레스를 빨아들이는 흡수지가 돼야 한다. 그림을 보면 편안해져야 한다. 그게 예술의 역할이다. 예술은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고 설명했다.

신작은 이런 수많은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박 화백은 자신의 묘비에 새기고 싶은 글이라며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하고, 변하면 추락한다”고 말했다. 시대가 변하면 그림도 변해야 하며,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고 계속 도전해야 한다는 박 화백의 철학이 남긴 말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지금도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인생이 담겨있다. 박서보의 1950년대 초기 작품부터 2019년 신작 2점 및 아카이브 160여 점을 다섯 시기로 구분하여 선보인다. 미공개 작품 일부를 비롯해 1970년 전시 이후 선보인 적 없는 설치 작품 ‘허상’도 볼 수 있다. 또한 지난 70년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세계 무대에 한국 작가 전시를 조력한 예술행정가이자 교육자로서의 면모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원형질’ 시기이다. 전쟁의 상흔으로 인한 불안과 고독, 부정적인 정서를 표출한 ‘회화 No.1’(1957)부터 1961년 파리 체류 이후 발표한 한국 앵포르멜 회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원형질’ 연작을 소개한다. 두 번째는 ‘유전질’ 시기이다. 1969년 달 착륙과 무중력 상태에 영감을 받은 ‘허상’ 연작을 소개한다.

세 번째는 ‘초기 묘법’시기이다. 그리지 않는 그림을 통해 비움을 표현한다.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하여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수없이 선긋기를 반복한 1970년대 ‘연필 묘법’을 소개한다. 네 번째는 ‘중기 묘법’시기이다. 1982년 닥종이를 재료로 사용하면서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하여 한지를 발라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 붙이는 등 행위를 반복하여 ‘지그재그 묘법’이라고도 불린다. 다섯 번째는 ‘후기 묘법’시기이다. ‘색채 묘법’이라고도 불리며 1990년대 중반 손의 흔적을 없애고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로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 깊고 풍성한 색감이 강조된 대표작을 볼 수 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박서보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국제학술행사’(5월 31일), ‘작가와의 대화’(7월 5일 예정), ‘큐레이터 토크’(7월 19일) 등이 개최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박서보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한국적 추상을 발전시키며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 큰 족적을 남긴 박서보의 미술사적 의의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박서보 화백_Photoby 안지섭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박서보,_묘법(描法)_Écriture_No.190227,_2019,_130x170cm_Pencil_and_oil_on_canvas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신작 2점 앞에 선 박서보 화백.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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