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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정재계 머리 맞댔지만…결론은 '日이 쥐고 흔드는 게임'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범종 기자
2019-07-10 18:19:06

韓 무역보복, 日에 타격 적어…WTO 제소도 실효성 떨어져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이 1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일본 경제 제재의 영향과 해법' 세미나에서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반도체 시장 전망과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청와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10일 각각 일본 수출 제재 대책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해법 대신 불리한 상황만 재확인했다.

◆전례 없는 경제→정치 종속에 기업 '충격'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을 포함해 총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30개사 총수와 CEO를 불러 이번 규제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일본 출장으로 불참했다.

청와대는 이날도 전경련을 부르지 않았다. 경제단체로는 무역협회와 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가 참석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은 해외 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했디.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이날 참석했지만 전경련 회장이 아닌 GS그룹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단기 대책으로 수입처 다변화와 국내 생산 확대, 인허가 행정 절차 최소화 등을 제시했다.

또한 기술개발·실증·공정테스트에 시급히 필요한 예산은 국회 협조를 구해 추경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재고는 1~3개월 분량으로 전해졌다. 이들 기업은 소재 공급사와 고객사들에 임원을 급파해 설득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선 고객사들이 3개월은 기다려줄 수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거래를 끊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일본 결정에 따라 반도체 공급 유무가 결정되는데다 한 번 잃은 고객을 다시 확보하기도 어려워 진퇴양난이 예상된다.

소재 국산화를 시도해도 관련 특허를 보유한 일본의 공격이 전망된다. 새로운 소재의 안정성을 몇 달 간 확인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데에도 최소 1년 이상 소요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7일 일본 출장도 정치적 경색과 관계 없이 B2B(기업 간) 관계는 변함없던 양국 경제가 이제 정치에 귀속됐다는 충격과 위기의식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이 '한일 무역분쟁이 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무역 보복 할수록 韓 불리, 日만 웃어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내 중소기업 경영 악화를 우려하는 한편 무역 보복 맞대응은 손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일본 경제 제재의 영향과 해법’ 세미나에서 “이번 제재가 소재 수출 승인 강화에만 멈출 경우 초기 3개월만 견디면 큰 피해 없이 대응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반도체 공급 차질을 빌미로 메모리 가격 협상력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수출 불허 결정을 내릴 경우 국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협력사들의 경영난 악화가 우려된다. 이 연구위원이 인용한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한국은 일본에서 리지스트 91.9%, 에칭가스 43.9%, 불화폴리이미드는 93.7%를 수입한다. 일본은 한국에 같은 품목을 각각 11.6%, 85.9%, 22.5%를 수출하고 있다. 한국이 단기간 내 대체 물질이나 공급자를 100% 찾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는 "최악의 경우 일본이 무역제재 품목을 1112개로 확대할 경우 배터리 소재와 광학, 화학원료 등 다른 산업으로 충격이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은 3개월 뒤 수출 허가 가능성이 높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확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업계 관측도 소개했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이 원천기술 상당부분을 갖고 있어 국산화에 특허 문제가 있다”며 “단지 선거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준비 과정이 치밀하고 길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이번 조치에 무역 제재로 맞대응하는 전략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미나에서 일본에 대한 무역 보복이 더 큰 손해를 부르기 때문에 외교적 해결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누가 덜 손해를 보느냐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죄수게임’을 펼 경우 양국 모두 치명타를 입는다는 설명이다.

조 연구위원은 일본의 3개 품목 수출 규제와 한국의 보복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우선 일본이 3개 품목 수출 규제로 반도체 부족분이 15%일 경우 한국 GDP 손실이 0.12%에 불과하지만 30% 부족시 2.2%, 45%가 부족하면 4.24%로 감소폭이 커진다. 만일 부족분이 80%에 달할 경우 GDP 손실은 8.6%로 뛴다는 분석이다.

반면 수출 규제로 인한 일본의 GDP 손실은 0.04% 내외가 될 것으로 조 연구위원은 내다봤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는 한국 외 수입처가 많기 때문에 아쉬울 것 없는 입장이다.

한국이 석유제품과 철강 수출 규제로 맞대응 할 경우에도 일본은 별 타격이 없다. 대일본 주요 수출품인 석유와 역청유는 일본이 한국에서 57%를 수입한다. 은과 도금강판은 각각 80.2%와 69.1%를 수입한다. 하지만 석유제품은 동남아와 중동, 중국 등 수입 대체지역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철강도 일본 내 대체성이 높아 마땅한 보복 수단이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이 보복할수록 불리한 구조다.

특히 한국의 무역 보복 시 일본 GDP 감소폭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조 연구위원은 내다봤다. 그는 “한국 수출기업의 독점적 이윤이 줄면 일본 내수기업이나 수출 기업 진입이 늘어 한국 기업을 대체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검토하는 WTO 제소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토론에서 “회원국의 안보 우려에 의한 무역 제재는 WTO에서 허용하지만 아베 총리가 한국의 신뢰 문제를 언급하며 보복 조치를 취한 점을 문제 삼을 수는 있다”면서도 “(그 때문에) 이길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정 교수는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기구 의원 정원이 7명인데 현재 3명인데다 연말에 1명으로 줄어 판결을 못한다”고 말했다. WTO의 분쟁 해결 기구 역할이 멈추는데다 향후 항소 등을 볼 때 2~3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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