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여파 확산으로 다음달 28일로 예정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유예시한 연장에 대해 본격 검토에 착수했다.
서울의 일부 재건축 단지와 자치구들이 최근 잇달아 분양가 상한제 유예시한 연장을 요구하고 나선 데 따른 것이다.
재건축 단지들이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피하려면 조합원들이 현장에 직접 참여, 각종 안건을 의결하는 조합 총회 등을 거쳐 다음달 28일까지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이유로 조합원 다수가 참여하는 총회 개최를 사실상 막고 있다.
이에 업계와 자치구는 분양가 상한제 유예시한을 3개월 정도 연기해줄 것을 공식 요구하는 등 민원 제기하고 나섰다.
정부는 일단 이같은 요구를 일단 긍정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코로나19 감염이 둔화 추세이고 설령 집단 감염 우려를 이유로 조합원 재산권 보호 차원의 조합 총회 개최 강행을 강제로 무한정 막을 수 없다는 점, 12.16 대책 이후 서울 부동산시장이 비교적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이유로 꼽고 있다.
그러나 정부로서는 현재 유예시한 연장 카드를 섣불리 쓸 수 없다는 게 고민이다. 무엇보다 조합원 다중 밀집 조합 총회 개최로 인한 집단 감염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재건축 단지별로 사업 추진속도가 모두 달라 유예시한을 연장할 경우 사업 추진속도에 따라 특정 단지만 혜택을 보는 형평성 문제 등이 제기될 수 있는 점도 고민거리다.
유예시한을 연장하면 부동산 시장에서 이를 규제 완화로 해석할 수 있고 이는 어렵게 잡은 집값을 다시 자극하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다는 점도 정부로선 부담이다.
16일 주택업계 등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그동안 분양가 상한제 시행과 관련해 접수된 정비조합 등 업계와 구청 등의 민원, 자체 파악한 정비조합의 사업 진행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금주 내 유예기간 연장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국토부는 작년 10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미 관리처분계획 인가까지 받은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대해선 시행을 6개월간 미뤄주기로 했다.
해당 단지는 다음 달 28일까지 일반분양분에 대한 입주자 모집 공고를 마쳐야 분양가 상한제 대상에서 제외되기에 일정을 서둘러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재건축 총회발(發) 전파 사례가 발생할 위험이 커지자 정부는 총회 등 일정을 미루도록 했다.
그러자 조합 등 업계는 천재지변에 해당하는 코로나19 때문에 일정이 지연됐고 당분간은 총회 등을 열면 감염 위험이 있다며 아예 제도 유예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시내 구청 중 강동구가 최근 분양가 상한제 시행 연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앞서 은평·동작·서초·강남 등 자치구가 이와 같은 의견을 낸 바 있다. 강동구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둔촌 주공 재건축 단지가 있어서다.
이 단지에서 일반분양 물량이 4786가구가 나올 예정으로, 3∼4월 서울 분양물량의 42%를 차지하고 있어 정부는 이곳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둔촌 주공은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어도 4월 분양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합은 일반 분양가를 3.3㎡당 3550만원으로 책정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분양가 협의를 진행해 왔으나 HUG는 3000만원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최근 조합이 HUG에 분양 보증 신청을 했지만 HUG가 보증을 내줄 가능성은 적다.
결국 아예 후분양으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면 분양가를 다시 정하는 관리처분계획변경 인가 총회를 다시 열어야 하지만 일정이 매우 촉박하다.
강동구 관계자는 "재건축 조합에서 분양가 상한제 시행 연기 민원을 제기함에 따라 이를 전달한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총회 때 집단 감염이 생길 우려가 있어 연기를 건의했다"라고 말했다.
조합과 구청만 아니라 주택 관련 단체들도 민원을 접수했다.
최근 재건축 조합 모임인 미래도시시민연대가 유예기간 3개월 연장 의견을 담은 건의서를 냈고 대한건설협회와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등 건설·주택 관련 단체들도 국토부에 유예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국토부는 이같이 수렴된 모든 의견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코로나19 확산 추이를 보면서 유예 연장 여부를 결론 낼 예정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렇다 할 방향성은 정해놓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 주 중 접수된 의견과 그동안 파악한 조합 사업진행 상황 등을 모두 올려놓고 검토를 해볼 예정"이라며 "아무래도 코로나19 추이가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예시한을 연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합이 조합원 총회 개최를 강행, 현장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터지게 되면 정부의 책임론이 대두할 수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만 내세우며 마냥 조합원 총회 개최를 막을 수 없다. 조합원 재산권과 밀접한 유예시한을 맞추기 위해 조합이 하는 노력을 정부가 강제로 제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확진자가 강남에서 열린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일어난 경험도 국토부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정비조합의 민원을 직접 받아내야 하는 서울시내 구청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에 가장 먼저 분양가 상한제 시행 연기 요청을 한 은평구는 지난달 조합들에 이달 20일까지 총회 개최를 연기해달라는 공문을 내린 바 있는데, 추가 연기를 다시 요청해야 할지 검토 중이다.
한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은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위한 총회를 야외인 학교 운동장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다른 구청들도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