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결국 양사가 합의를 보지 못한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SK이노베이션이다. 이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소송에서도 상당히 불리해질 뿐만 아니라 배터리 사업 확장을 위한 분사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ITC는 현지시간 10일 LG화학·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린다.
ITC의 최종 판결 전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합의를 볼 수도 있다는 예상이 있었지만 결국 합의금이 문제라는 풍문만을 남긴 채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소송에 대해 더 큰 불안을 안고 있는 쪽은 SK이노베이션이다.
LG화학은 예비승소 판결을 받았고, 배터리 사업부도 LG에너지솔루션으로 분사를 마쳤기 때문에 판결로 인한 리스크가 낮은 상황이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패소할 경우 준비 중인 배터리 사업 분사에 큰 차질이 생긴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연간 생산능력 20배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패소하면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히고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3조원을 투자해 건설 중인 공장도 가동할 수 없다.
만만치 않은 합의금으로 재무적 부담을 안을 뿐만 아니라 대외 신뢰도도 크게 떨어져 향후 추가 투자유치도 난관에 닥치게 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 분사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부문 대표는 지난 10월 말 열린 ‘인터배터리 2020’에서 “배터리 사업 분사를 재무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유는 ‘주력 사업의 부진’이다. 현재 SK이노베이션 매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정유업이 코로나19로 인한 저유가 기조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4분기에는 정유업 적자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배터리 사업부가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분사 검토의 이유로 지목된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부문의 지난 3분기 영업손실은 989억원으로, 1138억원 손실을 기록한 2분기보다는 나아졌지만 흑자전환은 이루지 못했다.
투자업계에서는 “2022년 손익분기점 달성이 목표인데 배터리 부문 적자가 이어지면 배터리 사업부가 독립해도 시장에서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빠른 분사를 통한 추가 투자 유치로 자금을 확보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상황은 익히 인지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 측은 공장 건설 중인 미국 조지아주 정부 등에 패소에 대비한 로비활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조지아주 내 대학과 의료기관 등에 총 43만달러 이상을 기부했고 약 2600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관련 교육 협약을 맺기도 했다.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미국 대통령이 일자리 등 자국의 이익을 생각해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미국 행정부가 거부권을 쓰지 않더라도 ITC가 미국 경제를 고려해 수출 금지나 공장 가동 금지를 유예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의 노력으로 조지아주 정부가 ITC에 탄원서를 올리는 등 판결의 변수가 많아졌다”며 “LG화학 측의 패소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판결 연기나 수출 금지 유예 등 SK 측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