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망 일주일여 전 동료에게 "오늘도 300개 넘음"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날은 밤 11시가 넘도록 일했다. 가족과 동료들에 따르면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하고 보통 밤 9시~10시까지 일했다. 하루 14~15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하루 평균 350개~380개 물량을 배송했다.
키 190cm에 몸무게 110kg로 건장했던 그는 입사 5개월 만에 몸무게가 20kg 가까이 빠졌다. 그는 평소 가족들에게 ‘그만두고 싶다‘, ‘너무 힘들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택배 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숨진 택배노동자만 16명이다. 지난 10월 과로로 숨진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의 아버지는 "밥 먹을 시간이라도 줬어야지." 라고 울부짖었다.
과로로 인해 쓰러지거나 현장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일에는 부산의 롯데택배 노동자가 배달 중 쓰러졌고, 14일에는 한진택배 택배노동자가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여전히 누워있다. 그리고 지난 22일에는 로젠택배 택배노동자의 손가락이 레일에서 절단되는 사고도 있었다.
◆ 택배노동자 절반 "밥 못 먹는 날 많다"…하루 배송물량 ‘300개’ 이상
올해 코로나19로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하면서 온라인 소비가 크게 늘었다. ‘클릭 한번’ 주문만 하면 불과 하루 이틀 만에 집까지 갖다준다. 시간을 다투는 ‘로켓배송’ ‘새벽배송’은 배송시간의 기준이 됐다. 그런 속에서 택배기사들은 쏟아지는 업무량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1~13일 CJ대한통운 등 주요 택배사 4곳의 택배노동자 186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택배노동자의 점심식사 등 하루 휴게시간은 30분 미만(88.8%)이라는 응답이 대부분이었다.
택배노동자 절반 가까이(41.2%)가 업무 중 점심식사 횟수는 주 1일 이하였고, 주 2~3일(28.1%)이 뒤를 이었다. 점심식사 장소는 업무용 차량(39.5%)과 편의점(23.3%)이 각각 1, 2위로 전체 절반이 넘었다. 택배노동자 10명 중 6명은 끼니를 해결할 시간도 부족해 근무 도중이나 이동하며 때운다는 의미다.
성수기 택배노동자의 하루 근무시간은 14시간 이상이라는 응답이 41.6%로 가장 많았다. 특히 택배노동자들은 일명 ‘까대기’라고 하는 택배 분류작업에 성수기(62.6%), 비성수기(44.3%) 할 거 없이 하루 5시간 이상 소요했다.
택배 분류작업은 터미널에 모인 택배를 배송 권역별로 나누는 작업으로, 택배기사 과로의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택배 분류작업을 하는 별도 인력이 있는 경우는 22.0%에 그쳤고 이 경우도 비용은 택배노동자 본인 부담(44.6%)이었다.
택배노동자들은 하루 배송물량이 성수기에는 350~400개(20.5%), 비성수기에는 250~300개(24.2%) 수준이라고 답했다. 성수기 배송물량이 급증할 경우 야간근무 등을 통해 본인이 모두 배송한다는 응답(77.7%)이 대부분이었고, 대체 인력 고용은 19.4%에 불과했다.
택배 노동자들은 '배송 수수료 인상(31.4%)'을 가장 바라는 점으로 꼽았다. 지난해 기준 택배 노동자의 배송 수수료는 건당 800원 수준으로, 지난 2002년(1200원)보다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이외에도 '분류작업 전문인력 투입(25.6%)', '택배 주5일제 도입(22.4%)', '지연배송 허용(7.4%)' 등의 개선사항으로 꼽았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시민단체, 정치권에서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 관련 입법 대책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정치권은 ‘눈 가리고 아웅’식 미봉책으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법’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하 생활물류법)은 택배업을 등록제로 바꾸는 등 산업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택배산업은 20년전 3800억원 규모에서 올해 7조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이 법안에서 택배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내용은 고작 △위탁계약 갱신청구권 6년 보장 △표준계약서 작성 및 사용 권장 △안전시설 확보 노력 등이 전부다. 이마저도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어 실질적인 처우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택배노동자 과로사의 주된 원인인 택배상자 분류작업에 대한 해결책도 담겨 있지 않다.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노동자는 개인사업자 형태로 도급 계약을 맺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방치돼있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근로자’가 된다면 당연히 노동시간 상한(주 최대 52시간)을 지킬 수밖에 없다.
또 특수고용노동자의 대부분은 산재보험 적용 제외자다. 올해 7월 기준 고용부 통계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 59.9%가 산재보험을 이탈했다. 지난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故김원종씨의 사망에 대해 산재보험 적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것도 김씨가 보험 적용 제외를 신청해 산재 심사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근로기준법 적용과 원청 책임을 명문화하는 정도는 들어가야 과로사 방지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며 “이 법은 과로사 금지에 대한 면피용 법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택배업체들 역시 약속한 '과로사 방지' 대책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J대한통운과 롯데택배가 지난 10월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사회문제로 불거지자 △1000명 규모의 택배 분류 인력 투입 △택배 자동화 설비 추가 도입 등을 담은 과로사 방지 대책을 발표했는데, 대책위는 현장에서 이러한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일부 업체는 분류작업에 투입되는 추가인력 비용을 택배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수법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기주의 만연한 ‘언택트시대’, 시민 개개인 각성과 공동체의식 절실
택배노동자들이 근무 중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자, 사회적으로도 택배 인력 처우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배송 수수료를 올릴 경우 소비자가 부담하는 택배 요금이 늘어나더라도 감내하겠다는 국민적 여론도 긍정적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택배 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라면 택배 요금 인상을 감내할 수 있다'고 응답한 국민은 73.9%에 달했다.
배달요금만 인상되면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은 막을 수 있는 것일까? 공감을 상실한 지금 이 시대, 좀 더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에 대해 ‘실수로 죽은 것, 걔만 조금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라는 고위공직자 후보의 저급한 노동·인권 감수성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의 안전사고에 대한 사업주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과도한 법’이라고 호들갑떠는 기업인들과 이 법을 3년 째 방치해 온 정치권의 무책임한 행태에 쓴웃음이 날 뿐이다. 국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24일 택배노동자 사망 사건이 알려지자 부랴부랴 전체회의를 열어 '생활물류법'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나 역시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하고 힘겹게 스러져 간 젊은 택배노동자들의 영혼 앞에 부끄럽고도 미안한 마음이다.
‘쌀10kg 1포대, 갈비탕 11팩, 화장지30롤짜리 3팩, 고구마 2박스(7kg), 블루베리1kg 2봉지, 커피원두 2kg, 비타민제 4병, 마스크 1박스(100매)...’ 지난 한 달 동안 온라인으로 여러 차례 쇼핑한 품목들이다. 이 중에는 전날 밤 11시를 넘겨 주문했는데, 다음날 새벽 7시에 받은 것들도 있다.
생각해보면 새벽배송을 해야 할 만큼 급하지 않았다. 동네 마트나 시장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쌀, 고구마를 굳이 왜 택배 주문했을까···. 무거운 택배 박스들을 대문 앞까지 힘겹게 실어 날랐을 그분들께 한없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이 시간부로 온라인 쇼핑몰과 이커머스의 ‘로켓배송’‧‘새벽배송’ 회원 서비스에서 탈퇴한다.
‘빨리빨리’라는 말 속에 응축돼있는 ‘속도 숭배’, ‘속도 자본주의’에서 천박하고 저열한 비인간적인 우리들의 민낯을 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의 파편화가 심화되고 개인주의가 중시되면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도를 넘고 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시민 개개인의 각성과 공동체의식이다.
“나부터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대사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