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대란이었다. 발효 유제품 불가리스가 일부 품절 사태를 빚었다. 주가도 출렁였다. 장중 46만원대까지 뛰었던 주가가 하루 만에 34만원대로 고꾸라지면서 개미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남양유업 측이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뒤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앞서 지난 13일 남양유업 항바이러스면역연구소는 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의 항바이러스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실험 결과 감기 바이러스인 인플루엔자(H1N1)를 99.999%까지 사멸하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억제 부문에서도 77.8% 저감 효과를 보였다는 설명이었다. 이번 연구에 한국의과학연구원과 충남대 수의대 공중보건학 연구실 등이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신빙성을 더했다.
발표가 나오자 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14일 남양유업 주가는 장중 약 29%까지 급등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개인 투자자가 순매수한 규모만 54억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상승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효과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질병관리청 등 전문가들의 반박이 나오면서다. 남양유업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다가 15일 전일 대비 4.85% 빠진 34만3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결국 정부가 나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날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긴급 현장조사를 해봤더니 남양유업이 해당 연구 등에 적극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7개 불가리스 제품 중 1개 제품에 대해서만 위 실험을 해놓고 전체 제품에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는 것처럼 설명한 것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금융 감시 기관도 등판 시점을 고려하는 모양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번 발표 전후 남양유업 임직원들의 주식 거래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까지 조사에 나서 혐의가 잡히면 검찰 수사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불가리스의 코로나19 예방 효과에 대해 관심을 보였던 소비자들은 효과 입증이 어렵다는 증언이 나오자마자 즉각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남양이 남양했네", "불가리스 먹으면 백신 필요 없겠다", "잊힐 만 하니 또.." 등이 의견이 줄을 이었다. 백신 접종 사진에 불가리스 제품을 합성하는 등 각종 밈도 생겨났다.
남양유업은 지난 2013년 이른바 '갑질 논란'으로 이미 미운털이 박힌 상태다. 2010년과 2020년에는 경쟁사에 대한 음해 행위 등으로 경고를 받기도 했다. 창업주 외손녀의 마약 혐의 등 오너가의 도덕성 문제도 구설에 올랐다. 이번 사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오랫동안 쌓인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마음이 급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에 지쳐가고 있다. 백신 접종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불안감까지 높아지던 상황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기에 불가리스를 집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남양 불매운동'으로 매출 하락을 견인했던 것도 결국 소비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 급할 수록 돌아가고 다급할수록 멀리 봐야 하는 지혜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