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과 함께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2018년 10월 집행유예 선고로 석방된 지 18일 만에 50조원 규모의 투자 및 고용계획을 발표했다. 롯데그룹이 유통·식품·화학·건설 등 전 사업 부문에 걸쳐 5년간 50조원을 투자하고 7만명을 고용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총수 부재 속에서 둔화했던 경영활동을 빠르게 정상화하고, 미래 성장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 결정이었다. 롯데는 지난달에도 수소 사업 진출을 위해 오는 2030년까지 4조4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직전 정부인 박근혜 정부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2015년)과 이재현 CJ그룹 회장(2016년)이 각각 복역 중 사면받았다.
최태원 회장은 회삿돈 46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013년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2015년 8·15 특사로 풀려났다. 최 회장 사면 이후 약 한 달여 만에 SK하이닉스는 2015년부터 10년간 46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SK하이닉스는 해당 투자발표 이후 경기도 이천에 반도체 공장 M14(2015년)를 만든 데 이어 청주 M15(2018년), 이천 M16(2021년) 등 생산공장 3곳을 잇따라 세워나갔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며 지난해부터 국내 재계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담론을 이끌어왔다.
이재현 회장은 최 회장과 1년 간격을 두고 풀려났다. 앞서 1657억원대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로 2015년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이 회장은 2016년 8·15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듬해 5월 경영에 복귀한 이 회장은 '그레이트 CJ' 전략을 앞세워 3년간 물류, 바이오, 문화 콘텐츠 등에 36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부친인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 2009년 말 특별사면을 받은 뒤 이듬해 3월 그룹 경영 일선에 복귀, 그해 5월 그룹 사상 최대 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5대 신사업분야(태양전지·자동차용전지·LED·바이오제약·의료기기)에서 2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약 일주일 뒤엔 △반도체 △LCD △디스플레이 등 분야에서 26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으로 국가 숙원이었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전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시장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도 '가석방'에 화답해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미국 투자 건이 우선순위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오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올해 5월 한미 정상회담 직후 미국에 170억달러(약 19조5000억원) 규모의 제2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아직 공장입지 등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 총수에 대한 가석방 또는 사면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이뤄진 부분이 큰 만큼, 총수와 기업 입장에서도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하며 화답해왔다"면서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당면한 투자계획을 가석방·사면 이후로 늦추곤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