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사업 상징 '기흥'...이 부회장, 신기술 확보 주문
삼성전자는 19일 경기도 용인 소재 삼성전자 기흥 캠퍼스에서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 기공식을 열었다. 이 부회장도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사실상 복권 후 첫 대외 행보다.
이 부회장은 "차세대뿐만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라고 강조했다.
기흥 캠퍼스는 지난 1983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이 태동한 곳이다. 세계 최초 64M D램을 개발한 1992년에는 D램 시장에서 1위를 달성했다. 1993년 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를 달성하는 등 '반도체 초격차'의 초석을 다진 곳이다.
이 부회장은 "40년 전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첫 삽을 뜬 기흥 사업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라며 "'반도체 산업은 시장성이 클 뿐만 아니라 타 산업에 파급효과가 큰 고부가가치 산업'이란 이병철 선대회장의 말씀을 되새기며,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새로 건설하는 반도체 R&D단지는 미래 반도체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최첨단 복합 연구 개발 시설로 조성될 계획이다. 약 10만 9000㎡(3만 3000여 평) 규모로 건설되는 기흥 반도체 R&D 단지는 메모리,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등 반도체 R&D 분야의 핵심 연구 거점을 맡을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국내에 새로운 R&D 센터를 세우는 것은 2014년 이후 8년 만이다. 2025년 중순 가동 예정인 반도체 R&D 전용 라인을 포함해 2028년까지 연구단지 조성에 약 2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기흥 R&D 단지 건설을 통해 국내외 소재·장비·부품(소부장)분야 협력 회사들과의 R&D 협력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며 "(이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 확대와 우수 반도체 연구 개발 인재 육성으로도 이어져,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기술, 기술, 기술 강조...현장 목소리 담은 '뉴 삼성' 빨라지나
이재용 부회장은 기공식 이후 화성 캠퍼스를 방문해 임직원들과의 간담회와 DS 부문 사장단 회의를 가졌다. 간담회에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직원들의 건의사항 등을 직접 경청했다. 도전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조직 문화 개선 방안 등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반도체연구소에서 열린 DS부문 사장단 회의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주요 현안 및 리스크 △차세대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 진척 현황 △초격차 달성을 위한 기술력 확보 방안 등을 논의했다. 경계현 DS부문장은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들이 스스로 모이고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기회를 통해, 조직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날 기공식을 계기로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혁신을 주도해 반도체 사업에서 또 한번의 큰 도약을 이뤄내겠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이 반도체 기술력의 상징으로 통하는 기흥 R&D 단지 기공식에 직접 참석한 만큼 기술 개발을 가속화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 부회장은 그간 수차례 기술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지난 6월에도 유럽 출장을 마친 뒤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며 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후 이틀 만에 열린 긴급 사장단 회의에서도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키워드가 언급되면서 조만간 기술 중심의 경영 방향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뉴 삼성' 전략에도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복권 조치 등으로 현장 경영의 제약이 사라진 만큼 임직원들과 소통 기회를 늘리는 등 현장 행보도 다양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다만 사법 리스크는 해소해야 할 숙제다. 이 부회장은 이른바 '삼바 사건'으로 알려진 삼성물산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 관련 공판으로 1년 넘게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초반만 해도 격주로 열렸던 재판은 작년 6월께부터 주 1회로 늘었다. 지난 3월부터는 3주에 한 번씩 금요일에도 재판이 열리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특정 기업이 단일 사건으로 장기간 재판을 받는 경우는 이례적인 사례"라며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기업이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정치권의 배려가 필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