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배터리 산업과 관련해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발부터 재활용까지 배터리의 전 생애주기를 두고 글로벌 시장의 시장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자체 경쟁력을 가지려면 규제라는 문턱을 낮춰줘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유럽 눈독 들이는 배터리 패권...한국 상황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배터리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은 최근 전 세계 이차 전지 시장이 2020년 525억 8000만 달러(약 74조 7162억원)에서 지난해 576억 1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2025년에는 832억 4000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차 전지는 여러 번 충전 가능한 배터리로 차량이나 전자 제품 등에 두루 쓰인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기준 한국의 글로벌 이차 전지 시장 점유율은 25.8%로 중국(56.4%)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선전한 덕이다. 특히 전기차 등의 제품에 널리 사용되는 리튬 이온 배터리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수명이 길다는 강점을 가진다. 다만 소재 특성상 화재·폭발 우려가 있다는 점은 주의점으로 꼽힌다. 중국이 기술력을 주도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와 비교되는 이유다.
LFP 배터리는 리튬 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는 탓에 전기차에 배치했을 때 주행거리가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안전성이 높다는 것이 장점이다. 테슬라에 이어 폭스바겐, 포드 등이 LFP 배터리에 관심을 보인 배경으로 꼽힌다.
이호근 교수는 "충전 인프라가 지금보다 많아진다면 주행거리보다는 안전성에 관심이 더 치우칠 가능성이 있다"라면서 "그런 부분에서 LFP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겠지만 기술적인 장벽이 높아서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고 진단했다.
배터리 개발 경쟁은 국가 간 패권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했다. 유럽연합(EU)은 2026년 도입 목표로 '배터리 여권'을 추진중이다.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목적으로 배터리 생산부터 이용, 폐기, 재활용까지 배터리의 전 생애 주기 정보를 디지털화해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모두 자국 우선주의가 반영된 제도다. 소재의 국산화 비율을 높여 외국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는 자체가 경쟁력과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필요한 이유다.
"국내 시장이 워낙 좁기 때문에 시장 개척을 위해서 신소재나 제품을 개발했을 때 연구개발(R&D) 비용에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현재 팍팍한 규제로 인해 기업들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기업에 좀 더 유리하도록 손보는 등의 방식으로, 우리나라 사업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규제를 다소 풀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 양산 자체보다 시장 반영 관건"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은 전고체 배터리 개발 경쟁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한 배터리를 말한다. 화재에 민감한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적용하면 화재 위험이 현저히 줄어든다. 공기 중에 노출돼도 폭발이나 화재 위험성이 전혀 없다.
배터리 무게와 부피도 줄어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전고체 배터리는 그냥 껌 형태로 보시면 됩니다. 접어도 되고 마음대로 구겨도 되죠. 지금 리튬 이온 배터리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무게로도 같은 주행거리를 내거든요. (리튬 이온 배터리처럼 충전하지 않고) 카트리지 타입으로 만들어서 완충된 배터리로 재차 교체하더라도 전체 주행 거리는 충분해지니 '꿈의 배터리'라고 할 만 하죠."
현재 전고체 배터리 기술 경쟁에서 앞서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 도요타의 경우 2025년 전고체 배터리 양산에 돌입한 뒤 2027년에 상용화할 수 있다고 공식화한 상태다. 르노·닛산·미쓰비시 등 3사 연합체는 2030년까지 배터리 생산량을 현재 생산량 대비 20배 정도로 늘리는 한편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내 배터리 3사도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외 배터리 분야 석학과 협업하거나 연구소 등에서 집중 인큐베이팅하는 식이다. 업계에서는 국내산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기를 2030년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기업보다 최소 2~3년 뒤처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치열한 개발 속도와 달리 전고체 배터리의 대중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제품을 상용화하려면 대량 생산, 가격 경쟁력을 통해 경제적인 부분을 충족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제품 가격이 높고 생산량이 적은 상황이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조차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한다고 해도 하이브리드 타입의 일부 소형 배터리 외에는 전기차에 완전 적용하기 어렵지 않냐는 얘기가 나왔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최초로 양산하고 상용화할 건 분명하지만 시장이 열리는 시점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속도 면에서 이미 수천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따라잡기에 나서기보다는 밀도 높은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약 10년전쯤 우리나라에 전기차가 처음 도입됐던 상황을 떠올려 보죠. 불과 10여 년 지났을 뿐인데 지금 전기차 배터리 가격이 그 당시 전기차 배터리보다 약 85% 저렴해졌다고 하거든요. 전고체 배터리도 상용화 시기 자체만 볼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본이 2027년에 상용화하더라도 대중화하려면 10여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으니까요. 일본에서 먼저 출시한다고 해도 한국 기업이 적절한 가격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되는 것이죠."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일 주요 배터리 업계 기업인들과 함께 '이차 전지 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 40%를 달성하는 등 이차 전지 세계 최강국을 만들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이를 위해 △민·관 배터리 동맹 구축 등 안정적 공급망 확보 △2024년까지 배터리 생애주기 데이터베이스 구축 △배터리 핵심 기술 개발 등의 목표를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배터리 핵심 기술 개발에만 약 20조원의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민간 기업이 19조 5000억원, 정부가 1조원을 투자해 2026년 상용화를 목표로 차량용 전고체 배터리 개발 등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간 주력하지 않았던 LFP 배터리나 비(非) 리튬계 배터리 등에도 투자해 국내 기업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2030년까지 R&D에 19조 5000억원, 시설 투자에 30조 5000억원 등 총 50조원 이상을 국내에 투자하는 방향을 검토중이다. 차별화된 기술을 만들기 위해선 R&D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런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배터리 국내 생산 능력은 2021년 3939GWh(기가와트시)에서 2025년 60GWh로 1.5배 확대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