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운영자금 확보 목적으로 20조원을 차입한다. 차입기간은 오는 17일부터 2025년 8월 16일까지로 이자율은 연 4.6%다. 차입금액은 2021년 말 별도재무제표 기준 자기자본 대비 0.35% 규모다.
삼성전자가 은행권이 아닌 자회사로부터 대규모 운영자금을 빌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평균 총차입금이 18조원에 달했지만 대다수가 은행에서 빌린 자금이다.
삼성전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말 기준 삼성전자는 본사, 해외법인, 자회사 등을 포함해 현금성 자산 128조원을 보유 중이다. 그 중 국내 본사는 별도재무제표 9조원으로 나타났지만 대다수는 해외법인과 자회사 등에 묶여 있다.
현금 운용에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삼성전자는 자회사 장기차입금을 통해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하려는 모양새다. 향후 설비 투자 계획이 대거 잡혀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환율 변동과 잉여현금흐름 등 우려가 있어 보유한 128조원을 사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잉여현금흐름이란 기업 영업·투자·재무활동 등 일상적인 경영 과정에서 오가는 돈 움직임을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해 3분기 말 삼성전자는 영업 활동으로 들어오는 현금보다 투자 등으로 빠져나가는 현금이 더 많아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사장은 이달 1일 임직원 대상 경영설명회에서 "설비 투자를 줄일 생각 없다"며 "시장을 보면서 대응력을 키워갈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업황 둔화로 부족해진 투자 재원을 끌어 모아 계획대로 투자에 힘쓰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 4분기(10~12월) 반도체 사업을 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서 매출은 20조700억원, 영업이익은 27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영업이익 모두 전년(2021년) 동기 대비 줄었으나 영업이익이 이 기간 96.9% 감소하며 '어닝쇼크'를 겪었다.
파운드리 부문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만큼 자금 확보를 통해 초격차 전략을 펼칠 방침이다. 실적 악화에도 현재 삼성전자는 올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과 평택캠퍼스 P4공장 공사가 한창이다. 모두 올 하반기(7~12월)에 공사를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 평택 P4는 기존 P3와 같은 메모리·비메모리(파운드리) 칩을 최신 공정으로 생산하는 복합 팹으로 운영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시설 투자에만 사상 최대 수준인 53조원을 집행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조달한 20조원이 운영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묶였지만 설비 투자에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향후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고 여유 현금이 생기면 차입금을 조기 상환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운영자금 가운데 시설 투자에 어느 정도 사용할지 나온 부분은 없다"며 "(테일러시나 평택) 반도체 공장도 완공되지 않았을 뿐더러 반도체 업황이 언제 회복될지 몰라 수익 예측이 어렵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