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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美·EU 친환경 정책에 자국 우선주의 강화...韓기업 대응책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문은주 기자
2023-02-28 10:58:54

탄소세·원자재법·인플레법 등에 제조업 의존도 높은 韓 부담

美·EU, 녹색 일자리 위한 보조금 경쟁시 경제 블록화 심화 전망

"韓, 청정투자·첨단제조 세액공제 등 해외기업 유치 활용해야"

[이코노믹데일리]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주요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 정책이 자국 우선주의를 한층 견고하게 만들 수 있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에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탄소세' 징수 EU, 역내 그린딜 사업 보완 전망 
 
EU는 올해 다양한 정책의 시행을 앞두고 있다. 오는 10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범 운영하는 데 이어 EU 원자재법(CRMA), EU 역외 보조금제도 등 EU 우선주의 정책을 잇따라 도입할 전망이다. CBAM은 일명 '탄소세' 징수 제도로 잘 알려져 있다. CRMA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사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EU 역외 보조금제도는 외국 기업이 EU 역내 기업과 인수합병(M&A) 할 경우 자국 정부의 보조금 내역을 신고하도록 한 제도다.  

한국 기업이 당장 주목할 만한 정책은 CBAM과 CRMA다. EU는 앞서 2000년대 중반부터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도(ETS)를 운영해왔다. ETS는 기업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양에 상한선을 설정하고 한도 내에서 허용된 배출량을 구매할 수 있는 제도다. CBAM은 ETS와 연계해 탄소 배출량 제한 기준을 한층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철강·시멘트·알루미늄·수소 등 6개 품목을 EU로 수출할 경우 탄소 배출량 추정치를 바탕으로 관세를 징수하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른바 '탄소국경세'로도 일컬어진다. EU는 CBAM 도입을 통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겠다는 탄소 중립 목표를 공고히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한국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지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시멘트 등 CBAM에 영향을 많이 받는 제조업 기반의 산업군은 선제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신규 도입 제도에 대한 영향 분석 등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CRMA는 EU 내 생산 증산 등을 통해 원자재 공급망을 정상화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EU 역내에서 생산한 원자재를 사용한 제품에만 감세 혜택을 주고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역내 자구책을 마련한다는 면에서 CRMA는 미국 IRA와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이해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크 관리와 연구·혁신(R&D) 역량 강화 등을 함께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프랑스와 독일 당국은 CRMA 이니셔티브의 필요성을 EU 회원국들에 공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등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원자재 주도권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프랑스·독일 당국의 제안에는 유럽에서 원자재 채굴 및 재활용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국가 투자 기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EU 주요 자국 우선주의 정책 비교 [그래픽=임이슬 기자]


여기다 오는 3월 예정돼 있는 EU 정상회의에서는 역내 '그린 딜 산업'에 대한 추진 계획을 보완할 전망이다. EU 집행위원회(EC)가 내놓은 그린 딜 산업은 △청정기술 관련 규제 완화 △자금 조달 △고급 인재 개발 △탄력적인 공급망을 위한 개방 무역 등 네 가지 영역을 뼈대로 한다. 

당초 EC가 그린 딜 산업의 윤곽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청정기술 산업 관련 기금 조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EU 정상회의를 한 달 여 앞두고 '자금 조달'을 포함하기로 한 것은 미국과 중국 등 다른 국가가 그린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발맞추려는 정책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기후 변화 대응과 글로벌 탄소 중립 정책을 주도해온 EU와 달리 미국과 중국이 보조금 정책을 앞세워 자국 에너지 정책을 강화하기로 하자 태세를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 IRA는 전기자동차 구매나 미국 내 태양광 에너지 관련 사업을 추진할 경우 세액 공제와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찌감치 태양광 사업에 보조금을 지급해왔던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모듈 시장에서 중국 기업 점유율을 80%까지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EU 내 안보·에너지 불안이 고조되면서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요구사항도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낟. 석탄 의존도를 줄이고 천연가스 의존도를 높였지만,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천연가스 가격과 전기료가 여전히 상승세인 탓이다. 지난해 8월 기준 유럽 지역 천연가스 가격과 전기료는 전년 대비 각각 498%, 486% 상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관계자는 "한국 기업은 동유럽권 방산 및 에너지 산업의 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등 서유럽 가치 공유 동맹 협력 요구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라며 "유럽 내 원전 및 액화천연가스(LNG) 인프라 투자, 기후변화 대응 기술 개발 등에서 협력 기회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美IRA 이후 '녹색 일자리' 확대..."기회로 삼아야"

EU와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각각 0.7%, 1.4%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IRA를 발효하기로 한 미국은 올해도 대중(對中) 강경 정책을 기반으로 한 '미국 우선주의'를 한층 강화하고 차별적 규제를 확대할 전망이다. 

미국 내 외국인투자 심사제도를 강화하고 아웃바운드 투자심사제도를 신규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나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외국인투자 심사제도는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외국인 투자를 규제·감독하는 제도다. 외국인 투자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 △핵심 공급망 △첨단 기술 △투자 동향 △사이버 보안 △미국인의 개인 정보 보호 등 5가지 요인을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외국인 투자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철저히 감독하겠다는 것이다. 새로 추진하는 아웃바운드 투자심사제도는 제3국에 대한 신규 투자를 심사하는 것으로, 중국 등 관심 국가에 대한 신규 투자, 공장 건설, 지적재산 이전 등의 내역을 공개하고 심사받는 제도를 일컫는다. 

한국 기업들이 가장 주목하는 제도는 IRA다. 미국 재무부는 앞서 지난해 전기차용 배터리 부품 요건, 세액 공제 등 IRA 세부 규정을 2023년 3월께 공지한 뒤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1월 공개하기로 한 계획에서 늦춰졌다. IRA가 적용되는 핵심 광물과 배터리 부품 요건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IRA에 따르면 전기차 제조 기업들은 북미 지역 국가에서 만들거나 조립한 부품을 전기차 배터리에 50% 이상 사용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IRA는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 혜택을 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미국 의회 문턱을 통과한 기후 위기 대응 법안 중 하나로도 꼽힌다. 2030년까지 미국 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2050년까지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이 반영된 법안이기도 하다. 

메사추세츠대학 애머스트 캠퍼스의 정치경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IRA로 인해 향후 10년 안에 미국 내에서 청정에너지와 기후 관련 일자리가 900만 개 이상 생겨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8월 IRA에 서명한 이후 미국에서 새로 만들어질 녹색 일자리 수가 10만 개를 넘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녹색 일자리는 환경 친화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종이나 직무를 뜻한다. 

비영리 단체 클라이밋 파워에 따르면 IRA 시행 이후 미국 기업들은 31개 주에서 895억 달러(약 117조 8626억원) 규모의 청정 에너지 관련 신규 프로젝트 투자를 시작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애리조나주 와 미시간 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등에 신규 배터리 제조 공장을 세우거나 배터리 제조, 수력·태양광 에너지 개발 등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2007년 녹색 일자리법(GJA)을 제정해 관련 분야 일자리 창출을 서둘러왔다. 글로벌 탄소중립 달성 목표 아래 추가적인 감세 혜택이나 인센티브 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과 EU가 다른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자국 녹색 일자리 창출을 위해 보조금 정책 강화에 경쟁적으로 임하기 되면 역내 경제 블록화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중국에 맞서 IRA 정책을 시행하기로 한 미국 입장을 고려할 때 한국 기업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작년 발효된 미국 인프라법과 반도체법, IRA 등에 대한 바이든 정부 성과의 미국 내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으로, 미국 정부의 다양한 해외 기업 투자 유치 유도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IRA에 차별적인 조항도 있지만 청정 투자, 첨단 제조 세액 공제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존재하는 만큼 한국 청정 에너지 기업이나 배터리 업계가 이 제도를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본부장은 “수출 감소 등으로 한국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자국 중심주의 팽배, 각종 통상 규제 확대로 글로벌 경제 여건 또한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라며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등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발견하고 시장 상황에 따른 전략을 신속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요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 정책이 자국 우선주의를 한층 견고하게 만들 수 있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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