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미국이 첨단 산업인 배터리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중국 고립 전략을 구체화하는 가운데 삼성SDI가 중국에 연구소를 설립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삼성SDI는 대다수 국내 기업이 미·중 양국을 놓고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에서 중국에 연구개발(R&D) 거점을 마련했다.
4일 삼성SDI에 따르면 이 회사는 최근까지 독일·미국·중국에 차례로 연구소를 설립했다. 세계 3대 배터리 시장으로 손꼽히는 유럽·북미·중국을 무대로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삼성SDI는 지난해 7월과 8월 각각 독일 뮌헨과 미국 보스턴에 연구소를 세웠다. 이달 1일에는 중국 상하이에 배터리 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각 연구소는 지역별로 특화된 배터리 공법과 설비, 차세대 배터리, 소재 기술을 개발해 '배터리 초격차'를 확보하는 구심점 역할을 맡는다.
미국이 배터리 소재부터 최종 생산물인 셀과 모듈, 그리고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공급망 전부를 자국 중심으로 빨아들이고 있지만 국내 배터리 기업으로서는 중국 시장도 포기할 수 없다. 중국 배터리 업체인 CATL이 세계 점유율 1위를 꿰찬 이유도 거대한 내수시장 덕분이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2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을 기준으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 합계 점유율은 46.6%다. LG에너지솔루션이 1위(25.4%), SK온(11.3%)과 삼성SDI(9.9%)가 각각 4위와 5위다. 2·3위는 CATL(23.7%)과 일본 파나소닉(21.1%)이 차지했다.
그러나 중국 전기차 시장을 포함하면 국내 3사 점유율은 크게 떨어진다. 올해 1월만 놓고 봐도 1·2위가 모두 중국 업체다. CATL이 33.9%로 3위인 LG에너지솔루션(13.0%)과 2배 이상 차이를 벌렸다. 2위는 중국 BYD(17.6%)다. 중국이 배터리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삼성SDI가 중국에 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미국에 투자를 집중하는 기업들과 사뭇 다른 행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현지 생산시설을 운영 중이지만 R&D 기능은 국내에 집중했다. 삼성SDI는 중국에 있는 대학·연구기관과 협력하고 현지 업체 동향을 파악해 기능성·저가 소재 발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삼성SDI 중국 연구소는 미·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다극 전략'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는 미국에서 스텔란티스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제너럴모터스(GM)와도 합작을 약속했다. 또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요구하는 광물·소재 원산지, 셀·모듈 생산지 등 요건을 맞추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한창이다.
중국에서도 중장기적으로 현지 기업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합작법인을 만드는 등 협력 강화가 예상된다. 특히 중국 업체가 우위를 점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도전장을 낸 시점에서 연구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