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외국에 국내 기업의 첨단 기술을 넘기는 '기술 매국노'가 판을 치면서 형량을 지금보다 크게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술을 빼돌려도 무죄나 집행유예로 판결하는 탓에 처벌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서라도 막대한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불감증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13일 경제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른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복제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강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전날(12일) 검찰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전직 임원 최모(65)씨를 기소한 사건과 관련해 "매우 경악스러운 일"이라며 "양형 기준을 크게 높이고 감경 사유는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지방검찰청은 12일 최씨에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그를 구속 기소했다. 최씨의 일에 가담한 중국 반도체 업체 한국인 직원을 비롯한 6명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최씨는 중국 시안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1.5km 떨어진 곳에 공장을 지으려 했다가 투자를 받지 못해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출된 내용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설계도와 공정 배치도, 클린룸 기술인 BED(Basic Engineering Data)다.
이 사건이 반도체 업계는 물론 산업계 전체에 충격을 준 이유는 최씨의 이력과 그가 중국으로 빼돌린 기술이 이전 기술 유출과는 달라서다. 최씨와 일당이 훔친 삼성전자 공장을 통째로 복제해 지을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정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최씨는 삼성전자 상무를 지낸 뒤 하이닉스(SK그룹 인수 전)로 가 사장 후보까지 오른 인물로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름만 대도 알 정도다.
최씨는 국내 반도체 업체 직원 200명을 영입해 자신이 실소유한 중국 반도체 업체에서 20나노급 D램을 양산하려 했다. 그러나 수율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미·중 갈등으로 인해 반도체 장비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고 파악됐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 핵심 기술을 유출한 사람을 3년 이상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다. 부정경쟁방지법의 최고 형량은 징역 15년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이다.
법 조문과 달리 최씨 일당이 실제 재판에서 최고형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5월까지 5년간 산업 기술 해외 유출 건수는 93건에 이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비율은 6.2%에 불과한 반면 무죄와 집행유예는 각각 34.6%, 39.5%에 이른다.
또 다른 경제계 관계자는 "피고인이 초범이라거나 깊게 반성한다는 이유로 기술 유출 범죄 형량을 줄여줘서는 안 된다"며 "기술 유출로 인해 얻을 이익보다 처벌이 무거워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