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중국 정부가 한국으로 떠나는 단체 관광을 허용하자 항공·여행·면세점 업계가 오랜 만에 화색을 띠었다. 지난 6년여 간 이어진 '한한령(限韓令)'이 풀릴 신호탄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산업계 전반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이 많다.
11일 산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한국행 단체 관광 재개가 당장 한한령 해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으로 유커(游客·중국인 단체 관광객)가 돌아오더라도 관광·유통 관련 업종 매출 증대에 제한적으로 도움될 뿐 중간재를 생산하는 업종과는 무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倔起)'를 저지하기 위해 대중국 제재를 쏟아내기 시작한 뒤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투자를 더 하지도, 아예 사업을 접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미국은 중국을 향해 연일 공세를 펴고 있다. 지난해 8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자국 투자 반도체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되 중국에 투자하지 않도록 한 반도체과학법(CHIPS Act·반도체법)에 서명했다. 그해 10월에는 18나노미터(㎚·1㎚=10억분의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 또는 기술을 허가 없이 중국으로 들이지 못하게 했다.
중국은 반도체 핵심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통제하기로 하면서 응수했다. 중국이 세계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갈륨이 94%, 게르마늄은 83%나 된다고 알려졌다. 유럽연합(EU)은 중국의 점유율을 각각 80%, 60%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자 미국은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 첨단 기술 관련 기업에 미국 자본의 기술 투자를 규제하며 다시 반격에 나섰다. 이 조치가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은 적다는 게 산업통상자원부 설명이지만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미국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이 설령 한한령을 완전히 풀더라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중국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한 지 꽤 오래 지났지만 이렇다 할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더구나 중국은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을 높이며 한국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수요 감소와 자급률 상승은 공급 과잉과 단가 하락을 불러왔다. 한국의 전체 석유화학 수출 중 중국 비중은 2009년 51.5%를 정점으로 꾸준히 떨어지다 지난해에는 38.1%까지 추락했다. 석유화학 제품 중 하나인 에틸렌을 보면 중국의 생산량은 2018년 2563만8000톤(t)에서 2021년 3714만3000t으로 급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 관계자는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 오는 것과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하는 사업이 잘 풀리는 건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며 "중국의 단체 관광 허용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변수(미·중 갈등, 경기 불황 등)가 워낙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