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경기 가평군 일대에서 만난 2023년형 ID.4는 폭스바겐의 전동화 비전을 제시하는 차다. 둥근 선과 면을 강조한 외관, 고급스러움은 더하고 심미성을 해치는 요소는 모조리 덜어냈다. 주행 질감은 내연기관의 그것과 차이를 줄이면서도 전기 파워트레인(구동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살려냈다. 한국에서는 '접근 가능한 프리미엄'이라는 다소 애매한 마케팅 전략도 그대로 가져간다.
이번에 탄 ID.4는 지난해 9월 출시 이후 연식 변경을 거친 모델로 내·외관이 바뀌지는 않았다. 배터리 용량도 82킬로와트시(㎾h)로 같지만 주행거리는 환경부 인증 복합 421㎞로 16㎞ 늘었다.
운전석에 앉으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답게 눈높이가 높고 전방 시야도 잘 확보된 편이었다. 내연기관차의 계기반을 대체한 'ID.콕핏'은 크기가 5.3인치로 작지만 주행 속도와 주행 가능 거리,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 정보를 표시하기에 부족하지는 않았다.
폭스바겐이 내연기관 시절부터 가장 잘한 건 '기본기'다. 시승 현장에서 만난 사야 아스키지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도 이 점을 강조했다. 폭스바겐은 잘 달리고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브랜드라고 했다. 독일 엔지니어의 고집 같은 것일까. 아스키지안 사장은 "폭스바겐 차량을 직접 운전해 보면 단순한 사양, 그 이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원을 켜고 운전석 정보창 오른쪽에 있는 변속 스위치를 'D(드라이브)'로 돌리면 주행 준비가 끝난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더라도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서서히 앞으로 나가자 전기차 특유의 정숙한 주행이 시작됐다.
가속력은 저속, 중속, 고속 상관없이 일정하게 속도를 올려줬다. 배터리 무게 때문에 동급 내연기관차보다 확실히 묵직하다. 따로 패들시프트가 없이 'B(브레이크)' 모드를 켜면 회생제동이 가능하다. 완전한 원 페달 드라이빙까진 아니지만 내리막에서 적극적인 제동을 통해 배터리를 충전, 주행거리를 늘려줬다.
몇 가지 확연히 드러난 장점도 있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높은 차체 덕분에 뒷좌석 센터 터널(바닥 가운데 불룩 솟은 부분)이 평평했다. 따라서 실내가 넓어 보이면서 타기 편했다. 또한 앞차와 충돌 위험이 있을 때 운전자 시선이 닿는 곳에 빨간색 조명으로 경고해 좀 더 빠르게 브레이크로 발을 옮길 수 있었다. 굽이진 도로에서는 살짝 속력을 높여도 중심을 잘 잡아 후륜 모터의 이점이 부각됐다.
아쉬운 점은 제동할 때 브레이크를 얼마나 깊이 밟아야 할지 처음엔 감을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차와 가까워지는 속도가 빠르다고 느껴진다면 생각한 것보다 더 강하고 깊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제동력의 문제라기보단 페달 반응이 낯설게 설정된 듯하다.
가격은 친환경차 세제 혜택 적용 후 △ID.4 프로 라이트 5690만원 △ID.4 프로 5990만원이다. 국고 보조금은 58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유럽산 전기차 중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ID.4 프로 모델을 산다면 5300여만원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