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는 두 차량 모두 세대가 바뀌는 완전변경 모델을 내놓으면서 디자인 측면에서는 안정을 택했다. CR-V는 누가 봐도 크게 싫어할 만한 요소 없이 전형적인 SUV 외관의 공식을 따랐다. 어코드는 최근 세단의 트렌드인 날렵함을 기본으로 갖추면서 젊어진 감각을 더했다. 첫인상에서 모험을 피하면서 '잘 달리고 잔고장 없는 차'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 역점을 둔 모양새다.
지난달 25일 만난 CR-V 하이브리드는 겉에서 봤을 때나 운전석에 앉았을 때 눈을 홀리는 화려함은 없다. 그 대신 널찍한 공간과 달리기 실력에 대부분 힘을 쏟은 느낌이다. 여전히 공조장치는 터치가 아닌 버튼으로 조작하고 변속기는 레버를 앞뒤로 움직이는 옛 방식으로 되돌아왔다. 이는 뒤에 탄 어코드 하이브리드도 마찬가지다. 자칫 '올드'할 수 있겠으나 오히려 유행과 첨단이란 이름으로 편리함을 희생하지 않아도 돼 나쁘지 않았다.
실내는 확실히 이전보다 넓어졌다. 전장(길이)과 휠베이스(축간거리)를 각각 75㎜, 40㎜ 늘려 뒷좌석에 앉았을 때 무릎과 앞좌석 등받이 사이가 좀 더 여유롭다. 적재 공간도 골프백이나 대형 여행용 캐리어 3~4개는 너끈히 들어갈 정도는 돼 보였다. 곳곳에 마련된 수납함도 생활 공간으로서 편의성을 높여줬다.
주행 중 노면이나 정면, 측면에서 실내로 들어오는 소음도 동급인 준중형 또는 중형 SUV와 비교해 잘 잡아낸 편이다. 요즘 브랜드를 불문하고 NVH(소음·진동·불쾌감) 성능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점을 고려하더라도 괜찮은 편이었다. 콘크리트 포장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110㎞로 주행했을 때 편안하게 대화할 정도였다.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CR-V와는 또 다른 매력이 돋보였다. 둘은 각각 세단과 SUV로서 태생은 다르지만 엔진과 변속기를 공유하는 형제 차다. CR-V 하이브리드를 타보고 약 한 달 만에 어코드를 타며 느낀 두 차량의 차이는 장르가 서로 다른 것 이상이었다.
겉에서 봤을 때나 운전석에 앉았을 때나 눈에 띄게 젊어졌다. 낮아진 시선은 안정감을 더했고 송풍구 쪽에 가로로 길게 뻗은 그물 무늬는 다소 파격적이기까지 했다. 인포테인먼트 화면은 12.3인치로 크기를 키우며 시인성이 개선됐다. 디지털 계기반은 아날로그 감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 좌우로 보여주는 정보를 운전대 버튼과 대등하게 배치해 조작이 직관적이었다.
넓어진 실내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차의 진가는 달릴 때 드러났다. 하이브리드 중형 세단이라고 해서 연비 효율만 중시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초반 가속은 물론 시속 100㎞ 이상 고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속력을 높여 갔다. 급선회 구간에서도 쏠리거나 뒷바퀴가 흐르지 않고 노면을 단단히 잡았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꿨을 때 들리는 가상 엔진음은 인공적이긴 했지만 소소한 재미를 더하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가격은 구매를 살짝 망설이게 할 수도 있겠다. 요즘 어지간한 국산 소형 SUV도 3000만원은 줘야하는 걸 생각하면 다른 의견도 나올 법하다. CR-V 하이브리드 5590만원, 어코드 하이브리드 5340만원으로 향후 프로모션이 나온다면 판매량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