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마틴은 영화 007 시리즈에 등장한 '본드 카'로 유명하다.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가 탔다고 해 붙은 별명이다. BMW와 벤틀리도 영화 속 본드 카로 활약했지만 사람들의 뇌리엔 '본드 카=애스턴마틴'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았다.
DBX707은 바닥에 낮게 깔린 세단 또는 쿠페 스타일인 역대 본드 카와 다른 외형이다. 노면에서 차체 바닥까지 높이(지상고)와 전고(높이)를 비롯해 전체적인 덩치를 키웠다. SUV 인기에 따라 여러 슈퍼카 브랜드가 속속 이 분야에 뛰어들면서 슈퍼 SUV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 GT, 람보르기니 우루스, 페라리 푸로산게는 괴물 같은 성능과 준수한 공간 활용성을 겸비해 각광을 받았다. 여기에 DBX707이 가세했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애스턴마틴 전시장에서 만난 DBX707은 겉모습부터 남달랐다. 앞으로 길고 낮게 뻗은 '롱노즈(Long nose)' 형태 보닛과 오리 궁둥이로도 불리는 풍만한 뒷태가 범상치 않았다. 직선보다는 곡선을 사용해 날렵하면서도 유려한 인상을 줬다. 차체 뒷면에는 위로 치켜든 끝단을 따라 펼쳐진 유선형 리어램프(후미등)가 개성을 더했다.
DBX707은 SUV이면서도 슈퍼카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디테일을 담고 있었다. 일반적인 SUV보다 훨씬 차체가 낮아 보인다. 휠 규격은 23인치로 매우 큰 데 반해 타이어 사이드월(옆면)은 레이싱카처럼 얇다. 뒤쪽 좌우로 각각 2개씩 배치된 더블 트윈 머플러팁(배기구), 최상단 날개(스포일러)는 차량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운전대를 비롯해 각종 조작부 배치는 복잡하지 않지만 기품이 있었다. 변속 버튼은 중앙 인포테인먼트 화면 위에 '주차(P)-후진(R)-중립(N)-주행(D)' 순서로 배치됐는데 이는 애스턴마틴 차량의 특징이다. P·R단과 N·D단 사이엔 시동 버튼이 큼지막하게 있다. 시동을 걸려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빨갛게 불이 들어오는 게 포인트다.
사실 첨단 텔레매틱스(통신+정보과학)로 무장한 차량과 비교하면 불편한 점이 많다. 인포테인먼트는 터치스크린이 아니다. 스마트폰 연동 기능은 애플 카플레이만 유선으로 지원하고 안드로이드 오토는 안 된다. 휴대전화 무선 충전기는 센터페시아(운전석과 동승석 사이 조작부가 있는 곳) 아래 뻥 뚫린 곳에 있다. 그 흔한 사이드미러 접는 버튼도 없다.
운전대를 잡으니 모든 불편이 다 용서됐다. 내비게이션 따위 없어도 좋다. 시동을 걸면 우렁찬 배기음이 울리며 엔진 온도를 빠르게 높였다. 남자의 로망은 이때부터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차 이름이기도 한 최고출력 707마력, 8기통 4.0ℓ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은 달릴 준비를 마쳤다.
주행 모드는 인디비주얼(개인 설정), GT,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로 구분됐는데 각 모드마다 성격이 확 달라진다.
일반적인 주행 때 쓰이는 GT 모드에서는 편안함이 강조됐다. 슈퍼카는 운전법을 따로 배워야 할 정도로 출력을 제어하기 쉽지 않지만 DBX707의 GT 모드는 웬만한 운전자는 어렵지 않게 탈 수 있을 정도였다. 배기음은 그렇게 크지 않으면서 묵직했다. 가속 반응도 즉각적이기보단 한 박자 쉬는 느낌이다. 승차감은 차량 성격이나 휠 크기를 생각하면 상당히 부드러웠다.
공식 제원상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제로백)은 단 3.3초다. 최고속력은 KTX와 맞먹는 시속 310㎞다.
가격은 '억' 소리가 3번은 난다. 3억1700만원부터 시작하고 옵션을 추가하면 3억원대 후반까지도 올라간다. 비슷한 가격대 2인승 슈퍼카와 비교하면 뒷좌석까지 4명(최대 5명)이 널찍하게 타고 짐까지 여럿 실을 수 있으니 오히려 실용적(?)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