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S37은 학술대회가 중심인 행사로 일반 소비자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행사는 아니다. 전시 규모도 지난 3월 열린 인터배터리·EV트렌드보다 축소됐다.
그러나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 C홀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공강을 이용해 나온 대학생을 비롯해 일반 관람객이 적지 않았다. 대회 사무국은 참관을 사전 신청한 일반 관람객이 1만명을 가뿐히 넘었다고 밝혔다.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 계열사는 앞선 인터배터리·EV트렌드 때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일반 관람이 시작된 24일 방문한 전시장에서는 전기차 구동 부품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전기장치(전장)부터 전기차 주행거리와 충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배터리 분야에선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개발 중인 '셀투팩(cell to pack)' 시제품 모형을 들고 나왔다. 배터리는 셀의 집합인 모듈 여러 개가 모여 제어 칩셋인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과 함께 팩으로 구성된다. 셀투팩 배터리는 중간 단계인 모듈 없이 셀을 묶어 곧바로 팩으로 만든 제품이다.
셀투팩 배터리는 기존에 개발된 셀을 가지고도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전기 전달 물질이 고체인 배터리)가 오는 2030년쯤 상용화되기까지 중간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은 이미 리튬인산철(LFP) 기반 셀투팩 배터리를 양산 전기차에 공급하고 있다. 한국에 판매 중인 전기차 중에는 KG모빌리티 '토레스 EVX'가 CATL 셀투팩 배터리를 탑재했다.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삼원계 양극재를 쓴 셀투팩 배터리 출시를 준비 중이다. 이번 전시에 삼성SDI는 각형, LG에너지솔루션은 파우치형으로 구성된 셀투팩 시제품을 공개했다. 삼성SDI 관계자는 "현재 제품 개발이 마무리된 단계로 고객사와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도 "파우치형 셀투팩 배터리를 제품화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3사 가운데 SK온은 EVS37에는 참여했으나 따로 전시 부스를 마련하지는 않았다. SK그룹에서는 전기차 충전기 업체인 SK시그넷이 부스를 열었다. SK시그넷은 파워캐비닛(전력 공급 장치) 하나로 여러 대 차량을 충전할 수 있는 멀티 충전기를 공개했다.
LG는 LG에너지솔루션과 더불어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이 통합 부스를 꾸려 전장 부품을 선보였다. LG전자는 구동 부품 합작회사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이 완성차 제조사에 공급 중인 구동 모터를 전시했다. LG디스플레이는 벤츠 EQS와 제네시스 GV80에 들어가는 차량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제품을, LG이노텍은 자율주행 차량 필수 부품인 카메라와 센서를 각각 내놨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가전 박람회 CES 2024에 공개된 '모비온'이 움직이는 모습을 국내 최초로 전시했다. 모비온은 네 바퀴에 조향 장치와 구동 모터를 합친 콘셉트카로 전·후진뿐 아니라 좌우로 이동하는 '크랩 주행'이 가능하다. 또한 제자리에서 360도로 돌 수 있다.
CES에서 구름 관중을 동원한 모비온은 이번 전시에서도 '씬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자리 회전과 크랩 주행이 시연되자 관람객이 발길을 멈추고 현대모비스 부스로 몰려들었다.
모비온에 탑재된 구동 기술 'e코너 시스템'은 차세대 전기차 핵심 기술로 주목 받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이동수단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관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e코너 시스템을 앞세워 고객사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기술 개발을 이어간 끝에 투명 솔라 필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현대차그룹 부스 관계자는 "투명 솔라 필름이 양산차에 적용되면 야간에 가로등 불빛으로도 배터리 충전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EVS37 참가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제품화 속력을 높여 시장 성장세가 회복되는 시점을 앞당기겠다는 목표다. 차기 행사인 EVS38은 내년 스웨덴 고텐부르크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