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최태원 회장 다음 서열에 그의 사촌동생인 최 의장이 오고, 그룹 핵심 중간지주사인 SK이노베이션을 최 회장 친동생인 최 수석부회장이 이끄는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오너 일가의 영향력 확대는 리더십 변화뿐 아니라 향후 추진될 강도 높은 리밸런싱에서도 나타날 전망이다. 24일까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계열사 간 인수합병(M&A) 방안을 종합하면 지주회사인 SK㈜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SK㈜ 지분은 최태원 회장이 17.90%로 가장 많이 갖고 있고 여동생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6.65%를 보유해 다음으로 많다.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0.14%를 보유 중이다.
현재까지 M&A 계획이 언급된 곳은 정유·에너지 사업을 하는 SK이노베이션과 건설 사업이 주력인 SK에코플랜트다. SK이노베이션은 도시가스와 전력 사업 부문 비상장 계열사인 SK E&S와 합치고 SK에코플랜트는 SK㈜ 자회사 가운데 알짜로 불리는 산업용 가스 생산 회사를 합병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물망에 오른 회사는 지난 2021년 말 SK㈜에 편입된 옛 SK머티리얼즈 자회사로 알려졌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나온 주된 배경은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온과 비상장사인 SK에코플랜트의 재무 구조를 개선해 예정된 일정에 맞춰 기업공개(IPO)를 완료하는 것이다. SK온과 SK에코플랜트 모두 상장 목표 시점이 2026년이다. 그해 말까지를 시한으로 잡는다 쳐도 현 시점에서 1년 반이 채 남지 않았다. SK그룹은 이들 회사의 IPO를 통해 배터리 등 신사업 투자 재원을 마련하려는 계획이지만 상황이 시급하다.
자금 조달이라는 목적과는 별개로 현재 검토 중인 방안이 예정대로 성사되면 SK그룹 지배구조에 작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SK㈜는 SK이노베이션이 SK E&S를 합병함으로써 더 많은 SK이노베이션 지분을 가질 수 있다. SK㈜이 보유한 SK이노베이션과 SK E&S 지분율은 각각 36.22%와 90%다.
관건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간 합병 비율이 어떻게 산정되는지다.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을 산정하려면 각각의 기업 가치를 먼저 평가해야 하는데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은 주가 우선적인 기준이 된다. 비상장사인 SK E&S는 자산, 수익 등을 토대로 가치가 매겨진다. SK이노베이션 주식 1주당 SK E&S 주식이 몇 주로 계산되는지에 따라 SK㈜가 추가로 확보할 SK이노베이션 지분은 달라진다.
SK에코플랜트는 SK㈜의 산업용 가스 자회사를 합병하면서 SK㈜ 보유 지분이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SK에코플랜트가 신주를 발행해 SK㈜ 산업용 가스 자회사 주식과 현물로 교환하는 방식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SK㈜의 SK에코플랜트 지분율은 약 42.86%보다 올라간다.
결과적으로 두 합병안 모두 SK㈜ 최대주주인 최태원 회장의 SK이노베이션과 SK에코플랜트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게 된다. 이는 최 회장 일가인 최창원 의장,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그룹 내 요직을 맡은 것과도 맥이 닿는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간 오너 일가보다는 전문경영인 중심 경영을 추구해 온 행보와 사뭇 다르다. 지난해까지 SK그룹은 SK수펙스 의장이던 조대식 부회장을 비롯해 장동현·김준·박정호 등 4명의 부회장이 의사결정에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지난달 30일 공시된 SK그룹 임원 명단에는 김 전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 빠졌고 나머지 3명은 부회장 직급만 가진 것으로 돼 있다.
오너 일가로 리더십의 축이 옮겨 오면서 이달 28~29일 경기 이천시 SKMS연구소에서 열리는 경영전략회의에 눈길이 쏠린다. 이 회의는 이사회나 주주총회 같이 안건을 의결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올해는 리밸런싱 방향을 논의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