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지난 9일 전기차 배터리 잔량이 90%를 넘으면 공동주택 지하주차장 출입을 막는다는 내용의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28일엔 전기차 '급속 충전기'의 충전율을 80%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90% 충전제한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 개정으로 완충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기차 화재 위험성을 줄이기 위함이다.
서울시 정책을 두고 12일 만난 공동주택 관리자, 전기차 소유주 등은 정책 실행에 난색을 표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 A씨(56)는 "단속요원이 매일 아파트 주차장 입구 차단기 앞에서 차량을 일일이 세워 배터리 용량을 물어봐야 한다"며 "90%가 넘으면 더 쓰다 오라고 할 수도 없고, 갑갑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기차 이용자도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박모(60)씨는 "주차장엔 90% 미만으로 해서 들어갔다가 지하 주차장 충전기로 100% 완충하면 막는가"라고 반문한 뒤 "강제성도 없는데 귀찮게 나설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책에 강제성이 없는 만큼 전기차 사용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전문가 의견도 나왔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빠르게 정책을 마련한 건 좋지만 강제력이 없어 개인의 '양심'에 맡길 수 밖에 없다"며 "해당 정책은 제도에 불과한데 미봉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정책을 만든 점은 칭찬할만 하지만 100% 동참하게 할 방안은 없으니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발전하는 걸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90% 충전제한'에 앞서 제시한 전기차 '급속충전기의 80% 충전제한'을 두고도 허점 많은 정책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급속 충전기에는 이미 80% 충전 제한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 급속 충전기에는 전력선통신(PLC) 모뎀이 장착돼 전기차 배터리 충전상태 정보를 배터리관리시스템(BMS)에서 건네받아 자체적으로 과충전을 방지한다. 반면 완속 충전기는 PLC 모뎀이 없어 과충전을 막을 수 없다. 현재 공동주택에 설치된 대부분의 전기차 충전기는 완속 충전기다.
지난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기준 공동주택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24만5435개 중 완속충전기는 24만1349개(98.3%)를 차지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급속 충전기에 제한을 두는 정책은 헛수고"라며 "화재에 취약한 데다 많이 보급된 완속 충전기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