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6일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이 많은 우리나라 주거지 특성상 지상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며 "화재를 막기 위해선 80~90%가량 충전이 된 시점에서 충전기가 스스로 꺼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업계에선 통상 전기차 충전기 화재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상 설치를 권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도심지 거주 형태의 70%가 아파트인 점을 감안하면 지상 충전소는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토 면적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적다는 점도 지상 설치를 어렵게 했다.
충전기를 지하에 설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화재를 최소화할 대안으로 제시된 게 80% 충전법이다.
현재 전기차 충전기는 급속과 완속으로 나뉘는데 급속 충전기가 완속 충전기에 비해 안전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급속 충전기는 통상 80%까지만 충전하는 충전 제어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급속 충전기는 80%까지 빠른 속도로 충전되지만 이후에는 급격히 충전 속도가 느려져 대부분 이용자들이 80%가량만 충전한다는 특징도 있다. 이에 반해 완속 충전기는 100% 이상 충전돼 과충전과 이로 인한 화재 발생 위험성이 높다.
문제는 2022년 말 기준 보급된 전기차 충전기 비율이다. 급속 충전기는 2만1000기(10.6%)인데 비해 완속 충전기는 17만3000기(89.4%)로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현재 아파트에 보급되는 대부분의 충전기가 완속이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이재조 한국전기연구원 박사는 "사람들이 자동차 배터리가 100%까지만 충전된다고 오해하는데 100% 충전된 후 충전기를 분리하지 않으면 차 내부의 블랙박스와 같은 기기들이 전력을 소모해 결국 계속 충전이 되는 상태"라며 "삼성이 스마트폰 배터리 폭발·화재를 막기 위해 갤럭시24 시리즈에 탑재한 충전 시스템을 전기차 충전기에도 적용해 보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갤럭시24 시리즈는 배터리 충전 시 100%에 도달하면 배터리 잔량이 95%로 떨어질 때까지 충전이 중지되는 반면 자동차 배터리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화재 사고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정부기관과 서울시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800억원 예산을 배정해 완속 충전기에 과충전 방지 기능을 탑재하면 한 대당 약 40만원의 보조금을 추가 지급한다고 지난 6월 밝혔다. 서울시는 지자체 중에는 처음으로 급속 충전기의 충전 제한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9월부터 시 소유 급속 충전기에 80% 충전 제한을 도입하며 12월부터는 자치구에서 서울에너지공사에 위탁한 급속 충전기에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안전성이 보장된 급속 충전기에 집중된 행정기관의 대책 마련을 두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필수 교수는 "이미 안전성이 입증된 급속 충전기보단 화재에 취약점이 있고 현재 많이 보급된 완속 충전기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