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안성 소재 에너지 기업 A사의 관리팀에 지난 7월 1일부터 인턴직원으로 출근하게 된 김모 씨(26)는 처음 출근 당시 애초 기대와는 많이 달랐던 사무실 분위기에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미생'처럼 입사 동기들끼리 서로 경쟁도 하고 '사수'라고 해 봤자 몇 년 터울 위 선배였을, 젊은 열정들이 '뿜뿜' 하는 회사 사무실을 꿈꾸며 문을 열었으나 사무실 안에 본인 또래 20대 사원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직원 한 명 빼고는 전부 차장 이상이어서 출근한 뒤 한동안은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며 "회사 생활이나 고충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는 점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해당 회사 관리팀은 총 10명으로 50대 이사 1명, 40·50대 부장 4명, 40대 차장 1명, 30대 과장 2명으로 '40대 이상'이 10명 중 6명이고 20대는 고작 2명이었다.
충남 천안에 위치한 부동산 기업 B사의 유일한 20대 신입사원 유모 씨(24‧여)는 "항상 평가받는 입장이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해당 회사의 연령별 비중은 20대 사원 비중이 10%, 40·50대는 50%다.
유씨는 "차장급인 직속 상사들 연령대가 나보다 훨씬 많다 보니 같은 동료라기보다 나를 평가하는 교수님 같은 느낌이 더 많이 들었다"며 "뭔가 질문하고 싶을 때에도 능력 부족한 신입이 들어왔다고 생각할까봐 못한 적이 많았다"고 연령 차이가 많은 직속 상사를 대하는 고충을 토로했다.
이는 최근 취업한 새내기 사원 개개인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통계에서도 국내 기업들의 20대 비중이 50대 이상보다 낮아지는 '세대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지난 5일 발표한 500대 기업 대상 연령별 인력 구성 분석 결과 2024년 기준 이들 기업의 30세 미만 인력 비중이 5분의1도 안 되는 19.8%로 집계됐다.
조사는 공시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기반으로 2022년부터 연령별 인력 구성이 비교 가능한 매출 기준 500대 기업 가운데 124개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 결과 30대 미만 직원 비중은 전년보다 1.2%p 감소했으나 같은 기간 50세 이상 비중은 19.5%에서 20.1%로 증가했다. 두 연령대의 비중이 역전된 건 리더스인덱스가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최근 3년간 30세 미만 직원은 △2022년 23만5923명(21.9%) △2023년 23만888명(21.0%) △2024년 22만1369명(19.8%)으로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반면 50세 이상 직원은 △2022년 20만6040명(19.1%) △2023년 21만4098명(19.5%) △2024년 22만4438명(20.1%)으로 소폭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듯이 인구구조가 변하고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통계'에 따르면 이번에 발표된 리더스인덱스 조사 기간과 같은 2022~2024년 동안 30세 미만 인구는 △2022년 673만4021명(13.03%) △2023년 654만8381명(12.66%) △2024년 637만2432명(12.31%)으로 매년 감소했다.
반면 50대는 같은 기간 △2022년 860만3509명(16.65%) △2023년 859만6363명(16.62%) △2024년 870만5899명(16.82%)으로 전체적인 증가세 속에 특히 지난해 10만9536명 증가했다.
특히 중위연령은 2022~2024년 동안 △2022년 44.9세 △2023년 45.5세 △2024년 46.1세로 매년 증가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 이러한 현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50대 이상 사원이 20·30대 사원보다 많아지는 회사가 증가하면 기업의 창의성과 혁신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젊은 피'를 수혈해야 하는데 청년 인구수가 줄어들고 정규직 고용을 안 하니 노동시장 환경에서 이러한 인구 구조 역전 현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활발한 기업 활동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향후 기업들은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인구 구조 등 기업 내외 환경에 맞춰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한 관리회사에 최근 입사한 조모 씨(28)는 환갑을 바라보는 50대 상사에게도 "ㅇㅇ님 ~~~할까요?"라고 말을 건넨다. 이 회사는 서로를 닉네임으로 칭하는 기업 문화를 장려하고 있다.
조씨는 자신이 입사한 회사에 대해 "유연한 업무 분위기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완두콩처럼 귀여워서 '완두콩', 발랄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올라' 등 닉네임을 지었다고 한다. 왜 그런 닉네임을 짓게 됐는지 물어보는 과정에서 대화 주제가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친밀감이 쌓이게 됐다"고 조씨는 덧붙였다.
일명 '다나까' 등 '회사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친밀한 언어로 대화함으로써 회사 생활과 관련한 고민을 말하는 것도 쉬워졌다고 한다.
서 교수는 "결국 중요한 건 '상사들의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40·50대도 디지털 기술 등 신입들에게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만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며 "서로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기업 문화가 형성돼야 인구구조 변화에 맞는 기업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