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세계적 통계 업체 스태티스타는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이 2022년 2만5000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3만3000TWh까지 증가할 걸로 예상했다. 채 10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8000TWh(32%)가 늘어난 것이다. 미국 총 전력 사용량이 4082TWh인 걸 감안하면 8년 안에 미국이 전력 소비량을 세 배 늘리는 꼴이다.
전력 수요를 이끄는 건 AI 분야다. AI 모델을 개발·유지하려면 천문학적인 양의 '빅데이터'를 반복해서 계산해야 한다. 이때 계산을 위한 컴퓨팅에 막대한 전력이 소모된다.
실제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의회에서 공개된 AI 전력 사용량 예상치를 보면 사용량 증가분이 국내 전체 발전량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벤 포크(Ben Fowke) 아메리칸 일렉트릭 파워 최고경영자(CEO)는 미 상원 에너지·천연 자원 위원회에서 자료를 공개하며, 올해 8TWh로 추정되는 미국 내 AI 전력 사용량이 2030년엔 652TWh까지 약 80배 성장할 것이라 밝혔다. 성장폭이 2022년 기준 한국 총 발전량 594TWh을 넘어서는 셈이다.
전기차도 전력 수요에 일조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글로벌 전기차(EV) 전망 2021' 보고서에서 2030년 전 세계 전기차의 전력 소모량이 최소한 525TWh에서 최대 860TWh에 이를 것으로 봤다. 최대치로 봤을 땐 2021년 일본 전체 전력 사용량 963TWh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도체는 전력 수요를 이끄는 숨은 주인공이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해 '보이지 않는 배출: 2030 테크 산업의 전력 소비량 예측' 보고서를 통해 2030년 반도체 산업이 최대 286TWh의 전력을 사용할 것이라 분석했다. 2021년 기준 호주의 총 전력 사용량 237TWh와 맞먹는 규모다.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인 TSMC는 2030년이 되면 70TWh의 전력을 쓸 것으로 관측됐다. 이는 현재 대만 전체 전력 소비량 278TWh의 25% 수준이다.
전력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세계 각국에선 전력망 효율을 높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지 선정부터 준공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발전소를 짓기보다 송·배전 시설을 교체하며 전력 손실을 줄이는 게 전력 확보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국내 전력업계의 실적도 수출 증가를 앞세워 덩달아 오르고 있다. 국내 최대 전력기기 업체인 LS일렉트릭은 지난 1분기 매출 1조386억원, 영업이익 937억원을 올렸다.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은 6%, 영업이익은 15% 성장했다. 효성중공업과 HD현대일렉트릭도 매출에 호조세를 보이며 높은 성장률을 올렸다. 이들 기업의 수출이 매출의 40~60%를 차지하며 실적 상승을 이끌었다.
전선업계도 훈풍을 맞았다. 국내 대표 전선 업체인 LS전선은 지난 1분기에 매출 1조4400억원, 영업이익 730억원을 거뒀다.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3.5%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이 21.4% 증가하며 성장세를 과시했다. 대한전선도 매출 7885억원, 영업이익 288억원으로 각각 12%, 63% 증가했다. 전선업계 역시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30~50%였다.
업계 전체에 수주 잔고가 쌓여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LS전선의 수주 잔고는 지난 1분기 기준 5조1845억원, LS일렉트릭은 2조5866억원이다. 합산하면 7조7711억원에 이른다. 나머지 업체들도 조 단위 수주 잔고를 올리며 향후 안정적인 실적을 낼 걸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호조세가 최소한 10년 이상 이어질 것이라 관측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국내외 시장을 막론하고 기존 전력망 교체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며 "앞으로 10년에서 15년 정도는 사이클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AI, 전기차 등 일부 영역을 넘어 모든 영역에서 전기 사용량이 늘어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가스레인지가 인덕션으로 바뀌고 제철소에서 전기고로를 쓰는 '전기화 시대'가 왔다"라며 "앞으로 전력 사용량이 계속 늘어나며 15년 정도는 전력 송·배전망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