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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걷는 탄소발자국…역행하는 기업들
[이코노믹데일리] 기후위기부터 출산·양육, 준법 감시까지···. 정치권의 선거 구호가 아니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담긴 내용들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중요해진 시대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보고서를 분석, 실천 여부를 점검해봤다. 편집자주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현실화된 기후 위기를 경험하면서 정부와 국회도 바빠졌다. 정부는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앞두고 추진 시기 등에 대해 이행 당사자인 기업 의견을 수렴하고 있고 국회는 2026년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정보를 사업보고서에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업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 지난해 기준 한국거래소에 ESG 경영 정보를 자율 공시한 기업 수는 161개사로, 전년 131개사 대비 23% 증가했다. 매년 내놓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도 기업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가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코노믹데일리가 23일 주요 대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해 보니 일부 기업들은 탄소 발자국을 줄이겠다는 약속과 달리 여전히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거나 계획을 바꾸고 있었다. ◆ 포스코, 탄소 배출 1위 기업의 '눈가리고 아웅'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의하면 지난해 주요 대기업 중 탄소 배출량 압도적 1위 기업은 철강 업체인 포스코다. 스코프1·2에 해당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해 총 8067만 이산화탄소상당량톤(tCO₂eq)이었다. 지난 2021년 국내 총 탄소 배출량 6억7660만tCO₂eq의 11.9%로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1329만tCO₂eq)보다 6배가량 더 큰 수치다. 참고로 온실가스 배출량 단위인 tCO₂eq는 지구 온난화 영향이 이산화탄소 1t에 상당하는 양을 말한다. 스코프1·2는 직·간접적으로 배출한 탄소로 포스코의 경우 제철소에서 나오면 스코프1, 제철소에 전력을 공급한 발전소에서 나오면 스코프2다. 업황 특성에 따라 포스코는 화석연료인 코크스를 사용하는 데다 전기로에 쓰이는 전력이 막대하다. 포스코는 2050년까지 단계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여갈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배출량은 늘고 있다. 심지어 집계 대상인 사업장을 줄이고도 전체 배출량을 줄이는 데 실패한 점은 주목할만 하다. 포스코의 탄소 배출량 추이를 보면 7850만tCO₂eq이던 2021년에 비해 2022년엔 7018만tCO₂eq로 10.6% 줄였다. 탄소 감축에 성공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2022년 포스코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몇몇 사업장이 분할됐고 같은 해 태풍 힌남노로 경북 포항시 냉천이 범람하며 포항 제철소가 마비된 영향이 컸다. 특히 지난해 보고서는 제3자에게 해외 사업장의 탄소 배출량 검증을 받지 않으면서 국내외 세부 사업장에 대한 정보가 빠졌다. 검증 강도가 약해진 만큼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이뤄졌는지도 어려워 보인다. ◆ 삼성-SK, '반도체 전쟁' 승리 위해 포기한 환경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패권 경쟁에 집중하면서 탄소중립 달성도 요원해지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발전으로 반도체 생산 물량이 늘고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들 기업들이 액화천연가스(LNG)처럼 화석연료 발전원을 늘리고 있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360조원, 122조원을 들여 경기 용인시에 2030년까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하면서 최소 10개의 초대형 반도체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여기서 소요되는 전력 사용량만 총 16기가와트(GW)로 예상하고 있다. 2022년 수도권 전체의 전력 사용량 최대치 39GW의 절반 수준이다. 2030년 수도권 전체 전력 사용량이 55GW로 늘어도 29%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소비된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8일 용인 클러스터에 1GW급 LNG 발전소 건설을 허가해 2032년까지 1GW급 LNG 발전소 3곳이 들어선다. 향후 전남부터 서해안에 걸친 초고압 전력망 증설 여부에 따라 발전소가 추가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LNG 발전소 설립은 사실상 탄소중립 달성 불가능을 선언한 셈이다. SK하이닉스가 탄소 배출량을 올해 619만tCO₂eq에서 2030년 755만tCO₂eq로 136만tCO₂eq(22.0%) 늘어날 거라 예상한 이유이기도 하다. 목표치로 측정된 값인 만큼 실제 배출량은 더 커질 수도 있다. 반면 대만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TSMC는 이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TSMC는 2020년 해상풍력 발전사로부터 약 1GW 규모 재생에너지 전력을 20년치 장기 구매한 후 올해 반도체 공장 7개를 증설하기로 했다. 공장 건설 전 재생에너지 발전원부터 확보해 둔 것이다. ◆LG엔 스코프3 '블랙홀'이 있다 스코프3 적용을 앞두고 LG그룹의 고민거리는 LG화학이다. 스코프1·2와 달리 스코프3는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 제품 생산 전반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말한다. 제품 생산을 위해 구매한 재화·서비스부터 임직원의 통근 과정에서 나온 탄소, 판매된 제품이 폐기되며 발생하는 탄소까지 포함된다. LG화학은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에 고기능성 플라스틱,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등 각종 원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에선 스코프3를 계산할 때 LG화학의 탄소 배출량도 포함해야 한다. LG화학은 지난해 955만tCO₂eq의 탄소를 배출해 석유화학 업체 중 가장 많은 배출량을 보였다. 원유를 여러 소재로 분해하는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많을뿐더러 화석연료 발전소에서 에너지를 끌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으로 LG전자의 경우 지난해 스코프1·2의 탄소 배출량은 87만tCO₂eq였지만, 스코프3는 7022만tCO₂eq에 달했다. 이중 제품의 사용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가 6120만tCO₂eq로 가장 많았고 납품받은 제품과 서비스가 280만tCO₂eq를 배출했다. LG디스플레이도 스코프3 배출량 91만tCO₂eq 중 제품과 서비스가 45만tCO₂eq로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 "탄소중립 달성 못 하면 경쟁력에 치명적" 환경 전문가들은 기업이 탄소 배출량 감소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이유로 제품 경쟁력 감소를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비영리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의 임장혁 연구원은 "글로벌 빅테크들이 대부분 2030~2040년을 탄소 중립 목표로 잡고 있다"며 "우리 기업이 미리 재생에너지를 준비해 두지 않으면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아마존 같은 기업의 탄소중립 요구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애플은 2020년 "향후 10년 이내에 제품 공급망 전반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며 2021년엔 관련 기업들의 스코프3 배출량 공시 의무화를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애플에 디스플레이 패널을 공급하는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기업이 스코프3 기준에 맞춰 공급망과 생산 공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 공급망을 관리는 측면에서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보원 녹색CEO(최고경영자) 아카데미 교수는 "중소기업은 이자도 내기 어려운 기업이 많아 ESG는 신경도 쓰지 못한다"며 "대기업의 1차 납품업체 몇 곳을 제외하면 탄소 배출량에 신경을 쓰지 못해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자업계 관계자는 "탄소 배출량 감축의 중요성은 다들 인지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스코프 3의 경우 배출량 기준이 광범위해 현장에선 대비하고 싶어도 탄소 측정 범위를 잡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답했다.
2024-09-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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