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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시 영상톡]"인생은 그냥 떠나는 것" 오수환 추상의 대화..가나아트센터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홍준성 기자
2018-06-26 18:27:49

대화(dialogue)전 6월 20일부터 7월 15일까지


대화(dialogue)는 서로 말을 전하는 것이다. 그림은 말을 못 하지만 형상으로 뜻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오수환의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의미 없는 붓질과 색채의 향연이다. 하지만 무의미한 작품 2개를 나란히 거니 말이 생겨나고 뜻이 오가며 교감이 이뤄진다. 이수환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했다. 의미 없이.

[오수환 작가가 가나아트센터에서 작품 '대화'(dialogue)를 설명하고 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한국 추상 화가의 대가 오수환 작가의 개인전 '대화'(dialogue)가 이달 20일부터 7월 15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그렸던 '대화' 연작 30여 점으로 구성했다.

대화 연작에서 작가는 자연과 고대문명 그리고 인간을 대화의 상대로 삼아 다양한 색채와 기호로 표현했다.

박신진 큐레이터는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사회 규범에 얽매이고 욕망으로 길든 현대인들이 작품을 만나는 순간 규범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기를 원한다" 며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잠시나마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나아트센터에 전시된 오수환 작가의 '대화'(dialogue)]


전시장에 들어서면 'Dialogue' 2개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있다. 거대한 붓으로 그린듯한 오방색(파랑,빨강,하양,검정,노랑)의 필획이 때로는 홀로, 때로는 다른 색에 가려져 있다.

오수환 작가는 "캔버스 2개를 엮어서 표현하는 형식의 작품을 20년 전부터 했다. 양쪽의 화면이 관계가 없으면서도 서로 충돌하는 현상을 볼 수 있고 조화를 이루는 현상도 볼 수 있다" 며 "이질적인 화면이 동시적으로 표현됨으로써 새로운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이다"라고 설명했다.

전시 제목인 '대화'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전시 주제인 '변화'라든지 '적막', '곡신' 등은 동양의 고전에서 작품 제목을 따왔고 대화는 플라톤의 대화를 연상하면서 정했다.

작가는 작품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실제로 추상화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며 다섯 가지 색으로 어떻게 화면에 리드미컬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궁극적으로 자유와 해방을 생각했다.

"회화적으로 뭔가 순수한 상태로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순수성을 음악적인 리듬, 색채의 리듬으로 보여주고 싶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런 지시도 없다. 그냥 감각으로 서로 교환하는 되는 것이다. 감각하나만 건지면 된다. 그리고 여기에 대중이 끼어들 틈이 없다. 대중이 그림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면 그것은 하나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오수환 작가가 가나아트센터에서 작품 '대화'(dialogue)를 설명하고 있다.]

작가가 감각을 중요시하는 것은 과학 위주의 이성 일변도의 사회로 가는 현대 사회에 대한 견제 장치이다.

"이성, 분석, 과학 일변도의 그런 세계와의 균형 상태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많이 휩쓸리기도 하도 주관을 못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자꾸 흔들리는 게 보통사람들이다. 거기에서 뭔가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다. 그런 면에서 감각을 얘기했다."

실제로 작가는 손목시계를 차본 적도 없고 자동차를 운전한 적도 없이 그냥 늘 걸어 다닌다.
꼬박 10년을 쓰고 있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가나아틀리에(작업실)를 가기 위해 서울 도봉구 방학동 자택에서 2시간을 걸어간다.
하루 4시간을 작업실을 가기 위해서 소비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게 시간 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시간을 이렇게 보내거나 저렇게 보내거나 문제가 없다. 의미를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수환 작가의 작품은 이렇게 무작정 걷는 것과 닮았다. 의미를 담기 보다는 솔직한 표현을 즐긴다.

[가나아트센터에 전시된 오수환 작가의 '대화'(dialogue)]


▶20년 흑백으로 작업하고 10년 전에 색채를 쓰기 시작

작가는 검은색 하나만 가지고 20년을 작업했다. 색채를 쓴 것은 10년 정도 된다.

"이전과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흑백에서 채색으로 이동했다. 채색을 쓰더라도 서양 사람들이 쓰는 채색하고 다르게 하려고 많은 여백을 남겼다."

흑백에서 채색으로의 변화는 좋게 보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정착을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결국은 변화이다. 가만히 있는 것이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똑같은 나뭇잎은 하나도 없고 강물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는 제자리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변화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내 사고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려면 숨길 필요가 없다. 인공적으로 다듬을 필요가 없이 사고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애썼다."

소위 평면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보여주냐 하는 것은 결국 작업하는 사람의 솔직성이며, 물감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나게 보여주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어느 면에서 이러한 변화는 시장의 논리도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흑백 작품은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 대중이 좋아하지 않고 화랑에서도 질색한다.
그런 점에서 20년간 흑백 작품을 하다가 색채로 돌아선 화가의 고뇌도 있었을 것이다.

[가나아트센터에 전시된 오수환 작가의 '대화'(dialogue)]


▶"말레비치는 서양의 명상가"..아무런 의미 없는 도형

전시장 2층에 올라가니 캔버스 안에 갇힌 사각형과 동그라미 도형이 눈에 들어온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말레비치(Malevich)는 작품에 사각형을 도입하며 "사각형 속에서 난 구원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오수환 작가도 캔버스에 도형을 도입하고 말레비치의 지적인 명상을 쫓았다.

"말레비치는 서양의 명상가라고 봅니다. 말레비치의 훌륭한 선각자적인 관점처럼 대화 군작도 저 나름대로 화면 속에 말레비치의 도형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요소를 등장시켜서 화면을 미적으로 만들었다. 제가 표현하는 기호는 아무 의미가 없다."

작가는 지워 없애는 감각적인 면이 있으면서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말레비치의 지성적인 표현을 끌어왔다.

"지우는 작업을 수십 년 해왔다. 억지로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꾸미지 않고 소위 무작위로 표현하고 인공적인 것을 빼내고 화면에 자연스러움을 구성하고 싶었다. 화면 자체는 자연은 아니지만 두 번째 자연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가나아트센터에 전시된 오수환 작가의 '대화'(dialogue)]


작가는 거기에 우연성을 화면 전체에 도입한다. 이를 위해 가능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어떨 때는 눈을 감고 그리기도 하며, 어떤 때는 물감을 뿌리기도 한다. 무의식의 상태와 교감하려고 애쓴다.

"프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게 90%가 무의식인데 의식만 가지고는 인간을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무의식을 잘 묘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오수환 작가는 '더 넓게, 더 깊게' 표현하는 것을 작가의 이상향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향을 위해서 가능한 많은 체험을 하고,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고 화면에 모든 것을 쏟아 낸다.

현실은 무질서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질서만 가져서는 안 된다. 무질서에다가 중첩구조를 도입하지 않으면 현실을 표현할 수 없다. 이것은 작가가 무의식 속에서 작업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오수환 작가가 가나아트센터에서 작품 '대화'(dialogue)를 설명하고 있다.]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지팡이를 짓고 계단을 오르는 오수환 작가의 뒷모습에서 서울에서 양평까지 걸어서 출근하는 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인생이라는 게 그냥 떠나는 것이고 고향으로 가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작품이 왜 이렇게 자유롭고 솔직한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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