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2월 간암 말기로 백병원에 입원한 '우향 박래현'은 병상에 있던 난을 보며 문뜩 그리고 싶어졌다.
줄기도 없이 꽃과 잎으로 완성된 드로잉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보름 뒤인 1976년 1월 2일, 국내에서 천경자와 함께 양대 산맥이었던 여류 화백이 56세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11일 찾은 서울 압구정 청작화랑에서 처음 공개되는 그의 마지막 드로잉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청작화랑에서 42주기를 기념하는 '우향 박래현 판화전'이 이달 11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미공개작 15점을 포함하여 판화 30여 점이 소개됐다.
우향 박래현(1920~1976)은 운보 김기창(1914~2001)과 '부부 화가'로 알려져 있다.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는 "부부전은 30년 전인 88년이 마지막이다. 우향 선생님의 판화전은 95년도 시몽 갤러리에서 개관전 이후 처음이니 23년 만이다" 며 "당시 판화전이 강남에서 있었는데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손 대표는 "그 당시에 전통을 살려가면서 현대적으로 표현한 판화 작품은 대중들에게 어려웠다" 며 "고객들이 판화에 대한 인식도 없었고 그림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고만 생각했다. 오히려 지금 시대에 판화가 딱 맞다. 40~50년을 앞선 작품들이다"고 강조했다.
전시장에 전시된 판화는 동판화로 1969년 미국 유학 때부터 1975년 병으로 귀국할 때까지 6년간 만든 작가의 말년작이다.
작가는 36세 때인 1956년, 제8회 대한미협전과 제5회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당시 최고의 화가였다. 이런 그가 49세의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을 선택하면서 새로운 장르인 판화를 선택했다.
우향의 며느리인 김스완이씨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어머님은 좀 더 큰 스케일의 그림과 공부에 목말라 하셨기 때문에 작품이 훌륭하신데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않고 유학을 갔다" 며 "뉴욕 프렛(pratt)에서 판화를 연구하고 당시 최고의 현대미술을 접했다"고 말했다.
무거운 쇠와 독한 화학약품을 다루는 동판화는 남자들도 하기 힘든 작업이다.
김스완이씨는 "동판 하나하나 끌로 파고 어마어마한 롤러로 밀고, 한 문양 할 때마다 동판을 넣고 컬러를 입힌다" 며 "굉장히 작업을 힘들게 하셨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굉장히 디테일한 색감이 좋아서 새로운 분야를 하고 싶다는 의욕이 있으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어머니가 한국에서 대통령상도 받고 다 화가로서 다 이뤘는데 뉴욕에서 아트 세계를 보니까 판화가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미개척 분야라는 것을 느끼셨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미공개 작품 중의 하나인 '빛의 향연' 우주에서 붉은 태양이 빛을 발산하는 듯하다.
손성례 대표는 "자세히 보면 미디어 아트 같은 느낌이 든다. 70년대에 벌써 그런 시도를 했다" 며 "뉴욕이라는 곳에 있으면서 더 많은 것을 접하고 현대화됐다. 요즘에 맞는 굉장히 앞선 작품이다"고 평가했다.
볏짚을 꼬아서 만든 한국의 전통 공예품인 맷방석의 문양을 본뜬 '고담' 작품도 흥미롭다.
우향은 한국화단에서 최초로 서양기법의 판화에 한국적 이미지를 현대화해 부각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