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6년 전에 이미 위헌판결이 난 '행정수도 이전' 이슈에 불을 당겼다. 법안을 재발의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다시 받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는 "수도는 국가기관이 집중적으로 모여 정치와 행정의 중추적인 기능을 실현하는 곳"이라며 관습헌법을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 이슈를 재점화하고 나선 것은 최근 급등하는 서울·수도권 집값으로 전월세 시장까지 요동치면서 국민 여론이 악화될대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은 국가균형발전을 기치로 '혁신도시시즌2' 정책에 따른 공공기관 추가 이전, 청와대와 국회까지 세종시로 옮기는 행정수도 이전으로 수도권 과밀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은 헌재 위헌 판결을 받아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데다, 야당이 동의하지 않고 있어 실현 가능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행정수도 완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기 위해 국회에 행정수도 완성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정식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위헌 판단이 내려진)2004년과 2020년 대한민국은 다르고 국민 생각도 바뀌었다"며 "통합당과 국회의 결단이 중요해졌다. 2020년 대한민국 현실에서 과밀 해소와 균형 발전 차원에서 행정수도 필요성을 진지하게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 합의에 따른 입법적 결단으로 얼마든지 행정수도 완성은 가능하다"며 개헌 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길거리 국장, 카톡 과장을 줄이려면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 아울러 더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도 이날 국회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예방을 받고 "세종 국회가 성사되면 국가 균형 발전과 역할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의장은 "국가 균형 발전은 우리가 꼭 추진해야 할 과제다. 수도권은 전국 면적의 11.8%밖에 안 되는데 인구의 과반이 몰리면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지방 분권에 대해서는 "3분(분권·분산·분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분산은 잘 진행됐지만, 분권 등이 아쉽다"며 "2차 공공기관의 전국 분산 문제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여야 합의를 전제로 수도 이전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여야가 합의한다면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국무회의 등 일부 기능을 세종으로 이전하는 것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무현정부 때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김두관 의원은 신행정수도 이전 특별법 발의를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행정 수도 이전을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지만 법률로도 가능하다“며 "새로운 법률로 헌법재판소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헌재도 시대정신을 법률에 반영하기 때문에 다른 평가를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의원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 구상대로 완성됐다면 오늘날 수도권 집중에 따른 여러 가지 교육, 부동산, 교통 등 정책들이 제대로 됐을텐데 너무나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행정수도 이전의 실무작업을 벌였다.
김 의원은 헌재에서도 여의치 않다면 개헌까지 가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개헌은 의원 200분 이상이 동의해야 하므로 제1야당이 동의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과 정의당 등 야당들은 민주당이 갑작스럽게 꺼내든 '행정수도 이전' 카드에 '부동산정책 실패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꼼수'라고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위헌성 문제가 해결된 후 뭔가 해야 한다”며 “수도권 집값이 상승하니 행정수도 문제로 관심을 돌리려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꺼내든 ‘행정수도 이전’ 카드에 대해 “부동산 실패를 모면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선거용 카드가 아니길 바란다”면서 “정부와 여당이 분명한 의지가 있다면 막연하게 운을 띄워 투기심리를 자극할 게 아니라 책임 있게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행정중심 복합도시를 넘어 행정수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헌 또는 그에 준하는 국민적 동의가 필수적”이라며 “따라서 이번 (행정수도) 제안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헌법 개정을 포함해 어떤 절차를 통해 국민을 설득할지, 행정수도 이전 로드맵을 책임 있게 밝히는 게 순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