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670조 마지막 오일머니 잡아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17일 방한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들이 총출동했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전날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빈 살만 왕세자와 기업 총수 간 차담회(차를 마시며 가볍게 진행되는 회의)가 진행됐다.
차담회에는 이재용·최태원·정의선 회장을 비롯해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사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이해욱 DL그룹 회장 등 국내 20대 그룹에 속하는 기업 총수 8명이 참석했다.
총수들은 이날 오후 4시 30분 무렵부터 롯데호텔로 집결했다. 앞서 오후 3시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가 호텔에 도착해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차담회는 오후 5시 30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7시까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주요 대화 주제는 총 사업비 5000억 달러(약 670조원) 규모의 초대형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인 '네옴시티' 사업과 원자력 발전소 건설, 정보기술(IT) 협력 등으로 포괄적인 사안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네옴시티는 사우디 북서부 홍해 일대에 총 길이가 170km에 이르는 직선 도시 '더 라인'과 해상 산업단지 '옥사곤', 산악 관광단지 '트로제나'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고속도로와 철도, 전력, 수도를 비롯한 도시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 기술, 산업 분야에 이르기까지 소규모 국가를 하나 만드는 수준으로 진행된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삼성은 건설과 인공지능(AI), IT 분야에서 협력이 예상된다. 현대차는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과 철도·수소 분야에서, SK는 친환경 에너지와 석유화학 분야에서 협력할 전망이다.
한화는 도심항공 모빌리티(UAM)과 방산 분야에서, 현대중공업과 두산은 각각 수소와 원전 설비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이 있다. DL그룹은 건설과 탄소 저감·포집·활용 사업에서, CJ는 유통·문화 부문에서 사우디 측과 협력할 여지가 있다.
이날 차담회에 앞서 오전에 열린 '한-사우디 투자 포럼'에서는 국내 기업과 사우디 정부·기업이 총 300억달러(약 40조원)에 이르는 총 26건의 계약서 또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들은 에너지, 고속철도, 화학, 바이오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먼저 현대로템은 사우디 철도청에서 추진하는 2조5000억원 규모의 네옴 철도협력을 위해 MOU를 체결했다. 사우디 고속철 사업을 따내면 한국 고속철의 첫 수출 사례가 된다. 삼성물산은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네옴시티에 임직원 숙소 1만가구를 철강 모듈러 방식으로 짓는 ‘네옴 베타 커뮤니티’ 프로젝트 관련 MOU를 체결했다.
양국은 그린수소·암모니아 사업도 추진한다. 한국전력·한국남부발전·한국석유공사·포스코·삼성물산은 PIF와 예정 사업비가 약 8조5000억원에 달하는 그린수소·암모니아 사업개발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사우디 지역에서 연간 120만t 규모의 그린수소·암모니아를 생산하는 사업이다. 화학(롯데정밀화학), 합성유(DL케미칼), 제약(지엘라파), 게임(시프트업) 분야 한국 기업과 사우디 투자부 간의 MOU도 맺었다.
한국과 사우디 양국 간 경제 협력이 현실화하면 1970년대 경제성장 견인차 역할을 한 '중동 붐'에 필적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네옴시티 총 사업비는 5000억 달러(약 670조6000억원), 이날 계약·MOU 체결로 투자가 예상되는 금액만 300억 달러(약 5조4000억원)에 이른다.
사우디는 석유 중심 경제 구조에서 탈피해 산업을 다각화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사우디 비전 2030'을 추진 중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이번 대규모 투자는 사실상 마지막 '오일머니'다.
한편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16일 저녁 늦게 한국에 도착해 이튿날인 17일 오후 8시쯤 경기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