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2022년은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에 희망과 좌절이 공존한 한 해였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기아)은 올해 상반기(1~6월) 글로벌 판매량 329만9000대를 기록하는 역사를 썼다.
같은 기간 현대차그룹보다 차를 많이 판매한 기업은 일본 도요타그룹(513만8000대)과 독일 폭스바겐그룹(400만6000대)뿐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11월까지 누적 판매 626만3872대를 달성하며 연간 기준 3위 달성이 유력하다.
반면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계속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과 경기침체 등 영향으로 국산차의 내수 판매 실적은 9년 만에 최저를 기록할 전망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부진할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같은 내수 부진은 반도체 수급난으로 생산 차질이 계속돼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소비자들이 신차를 받기 위해 1년 이상을 기다리는 출고 적체 현상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현대차그룹 일부 차종은 2년 가까이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세계 경기침체와 급격한 금리 인상 또한 내수 판매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특히 고금리로 신차 할부 금리가 오르면서 신차 구매 계약 취소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 국민들은 올해도 국내 완성차 5사(현대차·기아·르노코리아자동차·쌍용자동차·한국지엠)의 신차에 변함 없는 애정을 보였다. '대세'로 자리 잡은 전기차와 캠핑 문화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선호도가 높아졌으며 다양한 모델들이 연이어 출시됐다.
본지는 2022년의 끝자락을 맞아 세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EV), 하이브리드차(HEV), 경차 등 올 한 해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국산 차량 '베스트 5'를 선정했다.
◆세단의 '자존심'...현대차 '그랜저'
코로나19 이후 '차박(차에서 숙박하는 캠핑)'으로 대표되는 캠핑 열풍이 몰아치면서 SUV 판매량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에 따른 직격탄은 고스란히 전통 강자 세단의 몫이었다. 결국 올해 베스트 셀링카 자리를 SUV에 내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기아 SUV '쏘렌토'는 올해 1~11월까지 국내 시장에서 총 6만1877대가 신규 등록돼 2위 '그랜저' 5만9398대를 약 2500대가량 앞서고 있다. 쏘렌토가 꾸준히 5000~6000대의 판매량을 기록한 것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역전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현대차는 올 가을 그랜저 7세대 모델 '디 올 뉴 그랜저'를 출시하며 내년 1위 탈환을 선언했다. 일명 '각그랜저'로 불리며 1980년대 후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1세대 그랜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7세대 그랜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서다.
디 올 뉴 그랜저는 현재 주문 대기 물량만 10만9000대에 달하는 상황이다. 대기 물량이 올해 판매 목표(1만1000대)와 내년 목표치(11만9000대)의 80% 이상이다. 사전계약 첫 날에만 총 1만5973대가 계약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디 올 뉴 그랜저는 2016년 6세대 그랜저 시판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형 그랜저 모델로, 1986년 출시된 1세대 모델의 각진 외관을 계승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1세대 그랜저의 '원 포크 스티어링 휠(운전대)'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스티어링 휠이다. 원 포크 스티어링 휠은 스티어링 휠과 손잡이 연결 부분이 하나만 있던 것으로 과거 1세대 그랜저에만 적용됐다.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 부사장은 "7세대 그랜저는 전통을 계승하고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를 표현했다"며 "감성적 디자인과 섬세한 고객 경험을 통해 프리미엄 세단 시장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SUV 명가' 부활 이끈다...쌍용차 '토레스'
KG그룹을 새로운 주인으로 맞은 쌍용차는 지난 7월 출시한 신형 SUV '토레스'가 연일 판매 고공 행진을 이어가며 경영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
토레스의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에 쌍용차는 올해 1~11월 기준 내수시장 점유율 4.95%를 기록, 현대차(49.21%), 기아(39.03%)에 이어 국내 완성차 업계 3위로 뛰어올랐다. 르노코리아(4%), 한국지엠(2.82%)보다 높다.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가 '토레스 효과'로 명실상부한 '르쌍쉐(르노코리아자동차·쌍용차·한국지엠)'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토레스는 이미 7~11월 누적 판매량으로 1만9500대를 달성했다. 쌍용차의 당초 판매 목표 1만6800대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9월에는 기아 쏘렌토, 현대차 쏘나타 등 스테디셀러 모델에 이어 3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토레스 인기는 준수한 성능과 합리적인 가격 외에도 과거 쌍용차의 전설 SUV '무쏘'를 연상케하는 강인한 디자인이 가장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실제 토레스는 출시부터 무쏘 후속 모델격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쌍용차 관계자는 "90년대 초반 무쏘가 열었던 쌍용차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토레스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라며 "토레스는 쌍용차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특별한 모델"이라고 말했다.
쌍용차는 내년 하반기(7~12월) 토레스 전기차 모델 'U100(프로젝트명)'도 출시할 예정이다. 토레스가 이미 내연기관 모델로 흥행에 성공했기에 전기차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전기차의 '기준' 제시...현대차 '아이오닉 5'
현대차를 전 세계 전기차 시장 '퍼스트무버(선도자)'로 격상 시킨 모델이 있다. 바로 '아이오닉 5'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G-EMP'를 통해 생산한 첫 전기차 아이오닉 5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에서도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전기차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아이오닉 5는 올해 1~11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총 2만5965대가 판매되며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현지 판매를 시작한 미국에선 2만대 넘게 팔렸다. 지난 18일에는 미국 자동차 평가 매체인 켈리블루북이 선정하는 '올해 최고의 신차'에 등극했다. 켈리블루북은 미국에서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평가 매체 중 하나다.
아이오닉 5는 유럽에서도 잘나가고 있다. 유럽 시장 진출 1년 만에 판매량 순위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4월 유럽 시장에 출시된 아이오닉 5는 그해 총 1만8284대를 판매하며 21위에 순위를 올렸다. 아이오닉 5는 1년 8개월 만에 11계단이나 상승하는 실적을 거뒀다.
아이오닉 5는 심지어 한국 자동차의 '무덤'으로 불렸던 일본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아이오닉 5는 '일본 올해의 차 위원회 실행위원회'가 주최한 '일본 올해의 차 2022~2023'에서 올해의 수입차를 수상했다. 일본 올해의 차 위원회는 "아이오닉 5는 혁신적인 내·외관 디자인은 물론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429km), 역동적 주행 성능, 안전 사양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호평했다.
◆하이브리드차의 '새 바람'...로노코리아 'XM3 E-TECH'
하이브리드차의 새로운 바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르노코리아 쿠페형 SUV 'XM3 E-Tech(이테크) 하이브리드'는 국내 시장에 출시된 지 두 달 밖에 지나지 않아 판매량 측면에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난달 707대가 출고되며 침체된 회사의 분위기 반전은 이뤄냈다.
XM3 E-Tech 하이브리드는 도심 구간에서 최대 75%까지 전기차(EV) 모드 주행이 가능하며, 배터리 잔여 용량과 운행 속도에 따라 100% 전기차 주행을 할 수 있는 EV 모드도 선택 가능한 점이 특징이다.
XM3 E-Tech 하이브리드는 국내 출시 전 유럽 시장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검증된 차량이다. 올 상반기 유럽 하이브리드차 중 판매량 6위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사실 르노코리아 내부 분위기는 XM3 E-Tech 하이브리드 출시 전만 해도 싸늘했다. 특히 올해는 회사의 존립 여부마저 걱정할 정도였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과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판매 부진까지 이어지며 예산을 더욱 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르노코리아는 XM3 E-Tech 하이브리드 출시를 계기로 내년 대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XM3 E-Tech 하이브리드 출시 이후 어두웠던 회사 분위기가 밝아질 정도"라며 "내년에는 더욱 다양한 하이브리드 차량을 출시해 르쌍쉐 1위로 도약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차의 '혁신'...현대차 '캐스퍼'
현대차의 첫 경형 SUV '캐스퍼'가 한물 갔다고 평가받던 경차의 새로운 혁신을 이뤄냈다. 캐스퍼 인기에 힘입어 국내 경차 시장 규모가 10만대 아래에서 13만대 이상으로 회복됐기 때문이다.
캐스퍼는 국내 첫 상생형 일자리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위탁 생산하는 차종으로 현대차가 아토스 이후 19년 만에 선보인 배기량 1000㏄급 경차다. 원형 발광다이오드(LED) 주간주행등과 기존에 없던 색상을 적용한 아이코닉한 디자인, 운전석이 앞으로 완전히 접히는 시트를 적용해 차박도 가능할 정도의 넓은 실내 공간 등을 구현한 점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캐스퍼는 올해 11월까지 총 4만4493대 팔렸다. 라이벌로 꼽히는 기아 레이는 이보다 4000대가량 적은 4만583대가 팔렸다. 캐스퍼 효과는 국내 경차 시장 확대에 영향을 주고 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2000년대까지 인기를 끌던 경차는 2013년부터 경기가 점차 회복되며 판매량이 감소했고, 2020년에는 판매량 10만대 선도 붕괴되며 '경차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등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캐스퍼의 인기몰이로 국내 경차 시장은 올해 13만대 능선을 쉽게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경차는 올해 1~11월 12만2453대 판매됐다.
업계 관계자는 "캐스퍼가 죽어가던 경차 시장의 불씨를 살려냈다"며 "내년에도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경차의인기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