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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주의 여車저車] 도요타 경영 철학 '도요타웨이' 앞세워 '영업이익 1조엔' 돌파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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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장은주의 여車저車] 도요타 경영 철학 '도요타웨이' 앞세워 '영업이익 1조엔' 돌파 성공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장은주 기자
2023-08-26 07:00:00

도요타 기이치로, 창업 당시 美자동차 시장 경쟁자로 지목

1955년 日 최초 양산차 '크라운' 탄생...미국 수출도 성공

도요타, 위기 속에서 경영 철학 유지..."흔들리지 않아"

사진AFP 연합뉴스
[사진=AFP 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도요타가 올해 2분기(4~6월) '영업이익 1조엔'을 돌파하며 글로벌 완성차 업체 1위에 올랐다. 전동화 전환 시대에서 이 같은 성적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전기차 지각생'이란 별명이 생길 정도로 다른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로 전환할 때 도요타는 하이브리드 차량에 집중했다. 이처럼 남다른 소신과 철학을 바탕으로 1937년부터 명실상부 1위 자동차 기업으로 입지를 견고히 하고 있다.

◆'발명왕' 집안서 나온 일본 최초 자동차 생산 기업

도요타자동차주식회사는 1937년 설립됐다. 창업주인 도요타 기이치로는 자동차시대가 올 것을 확신했다. 그가 35세 때인 1929년 '일본의 발명왕'이자 그의 아버지인 도요타 사키치가 발명한 자동직기 특허권을 영국 회사인 플랫 브라더스에 매각했고 이렇게 마련된 자금으로 자동차사업을 준비했다.

기이치로는 포드나 제너럴모터스(GM)처럼 승용차 생산을 목표로 했다. 당시 그는 "3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면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부흥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1936년 첫 차 'AA형'을 출시하고 이듬해 그룹사에서 자동차 사업부를 분리해 도요타자동차를 설립한다.

그러나 중일 전쟁 중 일본 정부는 도요타에 군용 트럭 생산을 지시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승용차 생산을 중단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며 일본 국내 경제가 바닥을 치게 된 것이다. 

일본 사회는 미 군정의 디플레이션 정책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져 동남아에서 헐값으로 들여왔던 고무, 철광 등 모든 자재 수입이 사실상 중단됐다. 미국 점령군이 나누어주는 원자재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 트럭 생산조차 어려웠다. 당시 첫 소형차 'SA'를 선보였지만 경영이 악화돼 1949년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기이치로는 악화된 재무 상황에도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게 경영자의 도리"라는 신념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결국 임금 체불 등을 이유로 직원들은 파업을 벌였고 기이치로는 경영 악화의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도요타자동차는 1950년 한국에서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으로부터 군용트럭 수리·재생 주문, 트럭 제작 발주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경영 정상화에 들어섰다. 

가까스로 기사회생한 도요타는 1955년 일본 최초 양산차 '크라운'을 출시한다. 크라운은 '대중을 위한 승용차를 만들어 일본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겠다'는 기업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또 1957년에는 일본 최초로 호주 랠리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일본에서 최초로 미국 시장에 수출된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이는 오늘날 도요타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음을 시사한다.

1966년에는 도요타 대표 모델 '코롤라'가 등장했다. 코롤라는 처음 출시된 이후 2007년까지 누적 판매량이 3500만대에 이른다. 이는 40년 이상 40초에 1대씩 팔려야 가능한 수치다.

1982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극복 과정에서 분리했던 제조와 판매 부문을 다시 합병해 '도요타자동차'를 탄생시켰다.

◆흔들리지 않는 소신으로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 도전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던 도요타는 2007년 GM보다 많은 차량을 판매하며 전 세계 이목을 사로잡았다. 1930년대 미국에서 자동차 생산기술을 배웠던 도요타가 미국 기업을 앞지르자 미국 자동차 시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 브라더스가 도산하면서 '리먼쇼크'가 발생했고 미국은 도요타에게 대량 리콜이란 초대형 악재를 넘겼다. 결국 2010년 도요타는 미국 내에서만 총 710만대의 자동차를 리콜해야 했다.

같은 해 리콜 사태에 이어 △엔고(高) △중·일 외교갈등 △판매 급락 △자연 재해로 도요타는 부품·생산망 붕괴, 기업 이미지 추락 등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에 따라 1위 자리를 유지하던 도요타는 4위로 밀려났다.

도요타는 고유의 '도요타 생산방식'을 도입해 2012년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았다. 당시 도요타는 원가를 높이고 과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7가지 낭비 요소(과잉 생산·재고·공정·운반·대기·생산결함·동작의 낭비)를 설정한 뒤 불필요한 낭비 과정을 생략하는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적용했다.

도요타는 위기 속에서도 경영 철학인 '도요타웨이(Toyota way)'를 지켜왔고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유지했다. 이 같은 모습은 최근 전동화 전환 패러다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전동화 전환 흐름에 맞춰 앞다퉈 전기차 개발에 몰두한 반면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전념했다. 

도요타가 전기차 전환에 시간이 걸리자 전 세계 완성차 업계는 도요타의 후퇴를 전망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최근 전기차 성장 속도가 늦어지면서 하이브리드차가 급부상한 덕분이다. 

이런 배경 덕분에 도요타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1조1209억엔(약 10조188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7% 늘었다. 일본 기업의 분기별 영업이익이 1조엔을 넘어선 것은 도요타가 최초다. 

올해 실적만 봤을 땐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한 전략이 적중한 것으로 분석된다. 도요타 아키오 전 도요타 사장은 "정답이 무엇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한 가지 선택지로 국한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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