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은 15일 발표한 'ESG 공시 의무화 조기 시행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보고서를 통해 ESG 공시 의무화가 2025년에 시행되기 어려운 이유 5가지를 제시하고 성공적 안착을 위한 3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한경협 조사에 따르면 기업은 ESG 공시 관련 어려움으로 모호한 공시 개념과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을 가장 많이 꼽았다. 재무제표는 과거 시점에서 사업 성과를 화폐 단위로 집계해 공시하지만 ESG 공시는 기후변화 시나리오별 영향을 보고하는 미래 예측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ESG 공시가 신뢰도를 얻으려면 더 정교한 기준이 마련돼야 하지만 현재 국내는 물론 참고가 될 국제회계기준(IFRS)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최종 번역본도 나오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ESG 공시 로드맵을 올해 안에 발표할 예정으로 IFRS 최종 번역본은 한국회계기준원에서 12월 말에나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ESG 리스크 영향 측정과 관련해 통일된 기준이나 모델이 없어 외부 분석 업체마다 모델이 다른 점도 지적됐다. 기업이 설명할 수 없는 부정확한 데이터가 공시돼 해당 기업이 법적 책임까지 질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기준이 당장 확정된다 해도 2025년이라는 시점을 맞추기에는 빠듯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경협은 2025년부터 ESG 데이터를 공시하려면 적어도 2024년에는 관련 데이터를 취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적어도 1년 전에는 세부 공시 기준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IFRS 기준처럼 연결 기준으로 공시할 때에는 별도 기준으로 집계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한경협 회원사인 A사를 보면 탄소 배출 데이터 집계에 걸리는 기간이 별도 기준으로는 4~6개월인 반면 연결 자회사를 포함하면 8~12개월에 이른다고 예측됐다.
동남아시아나 중국 등 ESG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 진출한 기업이 많은 점도 연결 기준 공시 준비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진출 법인 분포는 동남아대양주 50.6%, 중국 20.2%, 유럽 7.1%, 북미 6.3% 등으로 나타났다.
부족한 인력도 문제다. ESG 공시가 신뢰성을 가지려면 기업마다 전문 인력을 갖춰야 하는데 대기업조차 최근에 담당 인원·부서를 갖추기 시작했다. 한경협은 국내 대기업의 ESG 담당 인원은 평균 3명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의 경력은 대부분 5년이 채 되지 않는다.
준비 기간이 짧고 인적·물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탓에 데이터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법률 리스크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한경협은 "사후에 발생한 ESG 이슈로 기업이 손해를 입으면 사전에 나온 ESG 공시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는 소송이 줄을 이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경협은 ESG 공시 의무화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준비 기간을 충분히 주고 제도 안착을 지원하며 전사적 ESG 관리 체계가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윤 한경협 CSR본부장은 "지속가능경영을 확산하기 위해 ESG 공시를 확대하는 것은 공감하지만 국내 여건에 맞춰야 한다"며 "주요국 동향을 면밀히 살피면서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