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1일 이후 두산그룹은 한 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완전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자칭, 타칭 '힘든 시간'을 보내던 두산이 지난달 29일 결단을 내렸습니다. 지배구조 개편안을 일부 철회한다는 결단이었습니다. 내용을 정리해 보면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로 떼어준다는 뼈대는 유지하되,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을 흡수하는 ‘주식 교환’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논란의 중심에 있던 주식 교환 비율 1대0.63은 없던 일이 됐습니다.
현재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로 넘겨주는 합병 비율이 합당하느냐에만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시장은 "두산밥캣 주주들은 피해를 보지 않게 됐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지난 4일(현지시간) 국제 신용평가사 S&P글로벌레이팅스가 새로운 화두를 던졌습니다.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넘어갈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 경영 환경을 유지할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S&P는 보고서에서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수정됐지만 ‘부정적 관찰대상’에서 제외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부정적 관찰대상 지정은 특정 기업의 신용등급을 향후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장과 같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이 기업의 재무 상태, 경영 환경 등에 부정적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할 때 사용합니다.
구체적으로 S&P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계획 철회로 두산밥캣의 재무 부담 확대 우려가 사라지고 소수 주주가 보호됐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두산로보틱스가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상당한 규모의 투자금을 필요로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두산밥캣이 자금 지원에 나선다면 회사 신용도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S&P가 두산밥캣에 대한 모기업(두산에너빌리티)의 부정적 개입 가능성에 주목한 셈인데요. 부정적 개입을 설명해 주는 건 '시장에 떠도는 의혹'입니다.
오너 일가 4세 박인원 두산로보틱스 대표이사의 지배력 확대를 위해 현재 보유 자산이 4000억원대에 불과한 두산로보틱스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위해 두산밥캣을 적극 활용한다는 내용입니다. 두산밥캣의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한국기업거버넌스 관계자도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두려는 것을 박인원 사장이 두산로보틱스로 성과를 내서 경영 승계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려는 목적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며 “두산로보틱스가 성장하기 위해 두산밥캣을 M&A 수단으로 이용할 경우 두산밥캣의 가치는 디스카운트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우려가 기우 만은 아니라는 얘기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투자 업계도 사실 확인에 나설 수 밖에 없었나 봅니다.
최근 두산밥캣은 두산로보틱스와의 합병 관련해 외국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비공개 기업설명회(IR)를 열었는데요, 이날 참석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야기가 시장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두산그룹이 짜놓은 판을 두산밥캣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인상을 받았다"였습니다. 그 인상 어디서 받았을까요.
당시 현장에서 한 투자자가 회사 측에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시너지를 물었는데, 박성철 두산밥캣 사장의 답은 “아직은 알 수 없다”였습니다. 한 기업을 이끄는 리더의 입에서 나오기엔 다소 무책임하게 느껴졌을 법한 답입니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투자의 세계에 '만약'이란 없지만, 의혹이 난무하는 두산밥캣과 로보틱스 합병 시너지를 두고 두산 관계자들조차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밥캣 주주들의 불안감은 오죽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