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데일리] 블록체인 게임 산업이 투기적 광풍의 시대를 지나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2.0 시대'의 문을 열고 있다. 한때 자산 가치의 급등락으로 투기판이라는 오명을 썼던 게임사들이 이제 법정화폐에 가치가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을 전면에 내세우며 생태계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넥써쓰와 위메이드의 행보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결제 수단 추가를 넘어 지속 가능한 게임 경제를 구축하려는 전략적 전환으로 풀이된다.
과거 블록체인 게임의 아킬레스건은 명확했다. 게임의 성패와 무관하게 요동치는 토큰 시세는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훼손하고 이용자를 '투자자'로 변질시켰다. 하룻밤 새 재화 가치가 폭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대중적 게이머의 유입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게임사들은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1달러, 1원처럼 익숙한 단위로 가치가 고정되면서 이용자들은 비로소 자산 가치 변동의 공포에서 벗어나 온전히 게임 내 경제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각 사의 전략은 구체적이고 진화된 형태를 보인다. 넥써쓰는 BNB체인에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KRWx'를 등록, 국내 이용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달러 환전의 번거로움과 환율 변동 리스크를 제거해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춘 것이다. 위메이드의 전략은 더욱 고도화됐다. 과거 자체 스테이블코인 '위믹스달러'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검증된 서클(Circle)의 'USDC'를 자사 메인넷으로 옮겨온 'USDC.e'를 공식 도입했다. 이는 자체 발행 코인의 '디페깅(가치 연동 실패)'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외부의 신뢰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아 안정성을 이중으로 확보하려는 영리한 선택이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위믹스 달러도 스테이블코인이라서 원래도 안정적이지만 USDC랑 연결하는 통로가 점점 많아질 수록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며 "USDC.e를 위믹스 생태계 안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한 업계 전문가는 "이는 투기꾼이 아닌 진짜 게이머를 생태계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선언"이라며 "게임머니처럼 가치가 명확한 자산은 이용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이는 곧 지갑을 여는 행위로 이어진다.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의 첫 단추를 꿰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P2E(돈 버는 게임)가 여전히 국내에서 불법인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과거 메타버스 열풍처럼 실체 없는 '주가 부양용 테마'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메타버스 때와 마찬가지로 스테이블코인 사업이 '미래 먹거리'라는 포장지로 활용되면서 기술적 필요성과는 무관하게 테마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술적 완성도나 킬러 콘텐츠 없이 이름만 내걸 경우 투자자와 게이머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경고다.
향후 블록체인 게임 시장은 스테이블코인을 '기축통화'로 삼아 자체 경제 생태계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다. 이는 중대한 변곡점이다.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스테이블코인은 단순 결제 수단을 넘어 게임 간 아이템 거래, 대체불가토큰(NFT) 마켓플레이스, 탈중앙화금융(DeFi) 서비스까지 연결하는 핵심 허브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는 Web2의 대규모 이용자를 Web3로 끌어오는 가장 현실적인 다리가 될 수 있다.
반면 각 사가 내놓은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게임 내에서 유의미한 쓰임새를 찾지 못하고 고립된다면 실패는 자명하다.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본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정적인 화폐 시스템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다. 결국 관건은 규제 환경과 기술력 그리고 콘텐츠 경쟁력이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의 향방이 제도적 기반을 결정할 것이며 각 게임사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기존 게임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재미와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안정적인 토대 위에서 누가 먼저 매력적인 '디지털 국가'를 건설하느냐의 소리없는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