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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세협상 '백기사'된 3인의 총수 "나라가 살아야 기업도 산다"
[이코노믹데일리] 누구에게나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찰나의 선택이 불확실한 미래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별의 순간'에서는 2025년 8월 1일 시행 예정이던 미국의 25% 상호관세를 피하고 한국이 주요 기여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세 명의 기업 리더를 조명합니다.<편집자 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AI 반도체 ‘칩 한 방’으로 수출 파도 막다 미국의 25% 관세란 초유의 압박 앞에서 한국의 핵심 산업 중 하나인 반도체는 치명적 타격이 예상됐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한국 전체 반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 만큼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의 대응 행보는 산업 전체 향배를 좌우할 중대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대규모 관세를 예고한 가운데 이 회장은 신속히 전면에 나섰습니다. 지난 7월 28일,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공장에서 전기차 기업 테슬라와 약 165억 달러(약 22조원) 규모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 계약을 전격 체결하며 ‘투자 기반의 신뢰 메시지’를 미국에 명확히 전달했습니다. 이 계약은 단순 납품이 아니라 미국 내 AI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하는 실질적 ‘게임 체인저’로 평가됐습니다. 이어 이 회장은 예정됐던 글로벌 정상급 리더십 포럼인 구글 캠프(Google Camp) 참석을 전격 취소하고, 7월 29일 워싱턴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가 포기한 구글 캠프는 구글 공동창립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주최하는 비공개 포럼으로, 세계 주요 정·재계 리더들이 비공식적으로 모여 장기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2025년 이 회장 참석이 기정사실화됐던 행사였으나 그는 미 행정부와의 접촉을 택했습니다. 이는 ‘협상 테이블 밖에서 벌어진 최고위급 실무 외교’이자 한국 기업 수장이 관세 이슈에 직접 몸으로 나선 상징적 행보였습니다. 워싱턴에 도착한 이 회장은 정부 대표단과 긴밀히 조율하며 삼성전자의 미국 내 투자 확대 계획을 구체적으로 협상 문서에 녹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AI 반도체뿐 아니라 메모리, 팹리스, 파운드리까지 연결되는 고도화된 공급망 제안은 협상에서 중요한 논리 기반으로 작용했습니다. 그의 전략은 “무역 협상에서 말보다 투자로 신뢰를 구축하라”는 철학을 실천한 것이며, 궁극적으로 관세 협상을 긍정적으로 이끄는 데 실질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동차 本領 미국 속도에 맞춰 재배치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강경한 관세 정책을 선포하며 전 세계 무역 질서에 경고장을 날렸습니다. 한국산 자동차가 25% 관세 부과 대상에 오르자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한발 앞선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는 이미 지난 3월 워싱턴을 방문해 백악관과의 협의 끝에 총 210억 달러(약 28조원) 규모 실물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선제 대응에 나선 바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별 최종 관세 발표가 예정된 8월 1일이 다가오자 정 회장은 다시 한번 위기 대응에 나섰습니다. 유럽 출장을 취소하고 7월 30일 워싱턴으로 향해 정부 대표단과의 협력 외에도 자신이 가진 미 정치권 인맥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전직 미 하원의원이자 현대차 워싱턴 사무소 대표인 드류 퍼거슨, 그리고 현직 하원의장이자 루이지애나 현지 정치 네트워크의 핵심인 마이크 존슨 등을 통해 전략적 소통망을 가동했습니다. 특히 현대차가 이미 완료한 미국 내 실물 투자—조지아 전기차 공장 및 루이지애나 철강 생산 기반은 협상에서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됐습니다. 정 회장은 이 점을 활용해 “현장에서 생산하고, 미국인을 고용하고, 현지 공급망을 재편한 한국 기업이 왜 관세 대상이 되는가”라는 논리를 설득력 있게 부각했습니다. 이는 협상단이 미국 측에 내세운 핵심 자료이자 ‘미국에 실질 기여하는 우방 기업’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효과를 냈습니다. 협상 과정 내내 정 회장은 ‘보이는 투자’로 미국 시장에 답했습니다. 그는 “전기차 시대의 흐름은 글로벌하지만 제조는 지역화돼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미국 내 고용 창출과 산업 전환에 한국 기업이 선제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몸소 보여줬습니다. 그의 이러한 실천 중심 리더십은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가치 제고는 물론 한미 간 협상에서도 ‘모범적 파트너십’의 표본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김동권 한화그룹 부회장, 조선업 팩키지로 '대한민국 조율' 싣다 대미 관세 협상의 핵심 전초전인 ‘조선업 패키지’ 전개를 위해 3대 그룹 총수 가운데 가장 먼저 한화그룹 김동권 부회장이 워싱턴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한화 계열사들의 일정을 잠정 중단한 가운데 그는 7월 28일 아침 워싱턴에 도착해 한국 정부의 핵심 제안인 ‘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한 번 위대하게)’ 패키지를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렸습니다. MASGA는 한화가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의 생산 능력 확대와 미 해군 정비 수요를 맞춘 장기 파트너십을 핵심으로 하는 전략적 제안으로, 이번 협상에서 ‘실물 기반 투자’로서 주목받았습니다. 김 부회장은 도착 직후부터 협상단과 함께 MASGA의 구체적 실행 방안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기술 이전 방안, 미국 현지 인력 재교육 및 배치, 해군 유지보수 참여 계획 등을 투명하게 제시했습니다. 특히 그는 한화 조선 계열사가 제공 가능한 고급 선박 설계 역량과 공정별 분업 모델을 상세히 설명하며 한국형 조선업 노하우의 '미국 내 내재화'를 강조했습니다. 협상 기간 동안 김 부회장은 미국 측 관계자들과 24시간 핫라인 체계를 운영, 실시간 질의응답과 협의가 가능하도록 준비했습니다. 미국 해군과 조달청, 상무부 산하기관 실무진들이 던진 각종 기술적·계약적 질문에 대해 직접 회신하며 현장 대응력을 보여줬고, 이는 “투자 이상의 진정성”이란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이 같은 기민한 움직임은 단순한 경제사절단 이상의 역할로, 민관 협력의 구심점이자 신뢰 형성의 촉진자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결과적으로 김 부회장의 전략적 행보는 MASGA를 단순 제안이 아닌 '협상 카드'로 격상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제시한 다양한 분야의 상호보완적 제안 중 ‘조선업’이 처음으로 미국 측 실무단에 강한 인상을 남긴 계기가 됐고, 이는 한국 산업이 ‘실물 기반 약속’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 논의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김 부회장은 이번 협상에서 ‘조선업으로 응답한 전령사’란 상징적 위치를 확고히 하며 향후 한미 산업 협력의 새로운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들 세 총수는 각자 반도체·자동차·조선 산업을 대표해 국가 생존을 위한 협상 무대를 ‘미래산업의 투자무대’로 전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제시한 3500억 달러 규모 투자 패키지, 특히 1500억 달러 규모의 MASGA 프로젝트는 이들의 행동이 뒷받침했기에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이들은 리더십도, 비전도, 정치권에 버금가는 가치를 실물로 보여주며 “나라가 살아야 기업도 산다”라는 메시지를 워싱턴 현장에서 행동으로 구현했습니다. 이제 한국산 반도체·자동차에 대한 25% 관세는 15%로 낮춰졌고, 한국은 일본·유럽연합(EU)과 동등한 대우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위기의 순간, 이재용·정의선·김동권 세 총수는 자신의 일정, 언론 노출, 본업의 연속성조차 포기하면서까지 워싱턴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의 긴박한 도착 순간까지 견인한 결연한 선택은 한국의 기업과 국가 운명을 연결시키는 진정한 ‘별의 순간’이었습니다.
2025-08-05 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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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하늘길이 닫혔을 때, 우리는 다른 문을 열었다"
[이코노믹데일리] 누구에게나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찰나의 선택으로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을 움직인 리더들의 결단의 순간을 돌아보며, 지금과 같은 혼돈과 위기의 시대 앞에 놓인 기업들의 생존과 도약을 위해 필요한 용기와 상상력을 다시금 떠올려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2019년 한진그룹은 조양호 선대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총수 공백’이란 중대 변곡점에 놓였습니다. 명확한 후계 구도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 조원태 당시 대한항공 사장이 그룹 회장직에 올라섰습니다. 승계 초기부터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란 내홍에 직면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경영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과 내외부의 의혹 속에서도 조 회장은 항공업의 본질과 회사를 지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취임 1년 만인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에 항공산업 전체가 마비됐습니다. 여객 수요는 순식간에 증발했고 대한항공의 하늘길도 멈춰섰습니다. 항공업계는 줄도산 위기에 몰렸고 국내 항공사들도 정부 지원 없이 버티기 힘든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조원태 회장은 정면 돌파를 택했습니다. 빠르게 화물 중심 체제로 사업구조를 전환했고, 고정비 절감과 유동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그해 대한항공은 글로벌 화물 수요를 적극 공략하며 전 세계 항공사 중 이례적으로 흑자를 기록했고, 이는 단순한 실적 이상의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습니다. 하늘이 멈췄지만, 대한항공은 멈추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같은 해 11월 국내 2위 항공사 ‘아시아나항공 인수’란 초대형 승부수를 던집니다.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떠안는다는 우려의 시선이 따랐지만, 조 회장은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결정”이라며 밀어붙였습니다. 국적 항공사 간 빅딜은 정부, 산업은행, 경쟁 당국, 소비자 여론 등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지난한 여정이었지만 조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3년 넘는 진통 끝에 2024년 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를 사실상 마무리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항공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 인프라”라는 그의 철학은, 한진그룹이 단기 생존을 넘어 장기적 전략으로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그의 ‘전환적 리더십’이었습니다. 변화와 소통, 글로벌 감각을 강조했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고객 중심 서비스를 그룹 전반에 확산시켰습니다. 가족 내 갈등도 승계 중심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란 가치로 전환했고 내부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기업은 누구의 것도 아닌 구성원과 사회의 것’이란 메시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조원태 회장의 ‘별의 순간’은 어쩌면 위기와 혼돈이 가장 짙었던 시기에 빛났는지도 모릅니다. 총수 부재, 산업 붕괴, 경영권 분쟁이란 삼중고 속에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생존을 넘어 비전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오늘날 대한항공은 글로벌 항공 재편의 중심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그 출발점엔 조 회장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 항공산업의 운명을 바꾼, 조원태의 '별의 순간'이었습니다.
2025-08-01 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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⓽화 허창수 GS그룹 회장 "형보다 먼저 나서는 법은 없지"
[이코노믹데일리] 누구에게나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찰나의 선택으로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을 움직인 리더들의 결단의 순간을 돌아보며, 지금과 같은 혼돈과 위기의 시대 앞에 놓인 기업들의 생존과 도약을 위해 필요한 용기와 상상력을 다시금 떠올려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이번 주인공은 조용한 리더십으로 '갈등 없는 계열 분리'라는, 한국 재계에서 보기 드문 선례를 남긴 인물 허창수 GS 명예회장입니다. 2004년 7월, 한국 재계에 조용하지만 중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LG그룹에서 GS그룹이 분리된 것입니다. 당시 LG그룹은 창업 2세대인 구인회 회장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이끌고 있었습니다. LG의 전통에는 분명한 원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장자(長子) 승계입니다. 허 회장은 LG그룹 내에서 LG상사, LG칼텍스 등을 책임지는 주요 경영인이었지만 장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룹 총수직은 고(故) 구본무 회장에게로 넘어갔고, 그는 자연스럽게 '물러나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됐습니다. 그러나 물러나는 방식조차 그는 달랐습니다. 계열 분리는 흔히 '형제의 난'이라 불릴 만큼 갈등과 분쟁을 동반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허 회장은 단 한 번도 공식 석상에서 반기를 들지 않았고 “형보다 먼저 나서는 법은 없다”며 LG그룹의 질서를 존중했고, 묵묵히 계열 분리를 준비했습니다. 그 결과, LG그룹에서 LG칼텍스, LG홈쇼핑, LG건설 등 주요 계열사들이 분리돼 새롭게 ‘GS그룹’이란 이름으로 출범했습니다. 이 조용한 분리는 한국 재계 사상 최초의 ‘무혈 분리’ 사례로 회자됩니다. “싸워서 얻는 것보다 질서 있게 나누는 것이 더 큰 결단”이란 허 회장의 판단은 결국 성공이란 결실을 거뒀습니다. GS 출범 이후 허 회장은 그룹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빠르게 정립해 나갔습니다. 정유, 에너지, 건설, 유통 분야를 중심으로 그룹의 역량을 재배치했고, 내부 안정과 장기 전략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GS칼텍스를 중심으로 에너지 중심 사업군을 강화하고, 유통과 건설을 안정적으로 병행하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외형 확대보다 내실 있는 성장과 사업 재편에 집중한 그의 행보는 ‘조용하지만 강한’ 리더십을 상징하게 됩니다. 이후 허 회장은 2011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아 경제단체 수장으로서의 역할도 병행합니다. 대기업 중심 경제계에서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과 관련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힘을 보탰으며, 재계의 안팎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허창수 회장의 ‘별의 순간’은 단순한 계열 분리 성공 그 이상입니다. 말 대신 질서 있는 물러남, 갈등 대신 품격 있는 분리, 그리고 무엇보다 조직의 미래를 위한 책임 있는 선택은 현재 위기에 처한 많은 기업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지금도 GS그룹 명예회장으로서 후계 경영진을 조용히 응원하며, 자주 대중 앞에 자주 나서지 않지만 그가 이끌었던 ‘조용한 결단’은 분명 한국 산업사에 길이 남을 별의 순간이었습니다.
2025-07-18 1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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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사라진다"
[이코노믹데일리] 누구에게나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찰나의 선택으로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 산업을 움직인 리더들의 결단의 순간을 돌아보며, 지금과 같은 혼돈과 위기의 시대 앞에 놓인 기업들의 생존과 도약을 위해 필요한 용기와 상상력을 다시금 떠올려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2024년 3월 초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총괄회장’으로 직함을 옮기면서 ‘이명희의 신세계’가 ‘정용진의 신세계’로 변화했습니다. 회장직에 오른 지 26년 만에 이명희 회장이 총괄회장으로 역할정리를 했지만 여전히 중요 사안마다 그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습니다. 이명희 회장의 ‘별의 순간’을 꼽는다면 1997년 삼성에서의 완전한 계열 분리 이후 신세계를 본격적인 유통 강자로 키우기 시작한 그 시점일 것입니다. 단 두 개의 백화점과 조선호텔만 있던 작은 조직을 ‘신세계그룹’이란 국내 유통업계 거인으로 탈바꿈시킨 순간, 그 중심엔 늘 조용하지만 단호한 리더 이 회장이 있었습니다. 부친인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제안으로 37세 나이에 현모양처의 꿈을 접고 1979년 경영에 뛰어든 이 회장은 2001년 '신세계백화점'에서 ‘신세계’로 사명 변경을 결정하며 유통 전반을 포괄하는 그룹 전략을 본격화했습니다. 이 결정은 백화점을 넘어 이마트, 프리미엄 아울렛, 센텀시티, 스타벅스코리아까지 확장되는 미래 신세계의 밑그림이 됐습니다. 이 회장의 리더십은 철저한 원칙과 사람에 대한 신뢰에 기반했습니다. “어린이 말이라도 경청해라, 사람을 나무 기르듯 기르라.” 이 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가 전한 이 조언을 늘 가슴에 새겼다고 합니다. 구학서 전 회장과 허인철 전 사장을 전폭 신뢰해 핵심 의사결정을 위임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믿지 못하면 쓰지 말고,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이병철 회장의 이 말은 이 회장의 경영 철학이기도 했습니다. 1998년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자산을 줄이던 시기, 신세계는 반대로 전국 요지의 부동산을 적극 매입했습니다. 이후 이 부지는 이마트 점포와 초대형 백화점으로 탈바꿈하며 신세계 성장의 결정적 발판이 됐습니다. 2006년에는 월마트코리아 인수를 단행해 이마트의 전국 확장을 이끌었고 2009년에는 부산 센텀시티에 세계 최대 백화점을 열어 글로벌시장에서도 주목받았습니다. 이 회장은 신세계로 사명을 바꾼 이후 늘 변화를 강조했습니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사라진다.” 이 철학은 신세계의 빠른 사업 확장, 트렌드 선도, 프리미엄화 전략으로 이어졌고 스타벅스코리아란 결실을 맺었습니다. 미국 유학 중 스타벅스를 경험한 아들 정용진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설립한 스타벅스는 신세계그룹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계열 분리 당시 1조7500억원 수준이던 신세계 매출은 이제 35조원을 넘겼고, 재계 순위는 33위에서 11위로 뛰었습니다. 이명희 회장은 삼성가의 막내딸에서 한국 유통업의 상징으로 우뚝 섰고, 이 회장의 ‘별의 순간’은 지금도 수많은 여성 리더들에게 빛이 되고 있습니다.
2025-07-11 16: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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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화 최태원 SK그룹 회장 "지속 가능 경영"
[이코노믹데일리] 누구에게나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찰나의 선택으로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을 움직인 리더들의 결단의 순간을 돌아보며, 지금과 같은 혼돈과 위기의 시대 앞에 놓인 기업들의 생존과 도약을 위해 필요한 용기와 상상력을 다시금 떠올려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최근 SK하이닉스가 시가총액 200조원을 돌파하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4일 한국거래소에서 전날보다 7.3% 오른 27만8500원에 마감하며, 주가는 사상 처음으로 시총 200조원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수치는 상징성이 큽니다. 지난해 초,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4’에서 3년 내 시총 200조원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는데, 그 시점을 1년 6개월 이상 앞당긴 셈입니다. SK하이닉스의 급성장은 SK그룹 인수와 궤를 같이합니다. 2012년 SK그룹에 편입되기 직전인 2011년, 시가총액은 약 13조원 수준이었지만, 이후 꾸준히 우상향해 2021년 1월 10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이 시점부터 SK하이닉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로 급부상했습니다. 메모리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HBM 등 AI 고부가가치 제품의 부상으로 시총 규모가 급격히 커졌습니다. 이 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SK그룹 차원의 공격적인 투자가 있습니다. 편입 전인 2010년대 초반에는 연간 투자액이 3조원대 초반이었으나 2022년에는 19조7000억원, 2024년에는 17조9000억원으로 커졌습니다. 2011년 3분기,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를 제출했을 당시 하이닉스는 분기 영업적자 3000억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천덕꾸러기를 최고 기업으로 키운 건 최태원 회장의 뚝심 있는 투자 덕분”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뚝심의 근간에는 ‘지속 가능 경영’이란 철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최 회장은 2020년 6월 29일, 공식적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 비전’을 발표하고 △탄소 배출 제로 △사회적 가치 창출 △디지털 혁신을 3대 핵심 축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기업은 사회와 함께 성장해야 하며, 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외면한 성장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고 역설해왔습니다. 이러한 신념은 SK의 모든 계열사 경영에 스며들었고, 지속 가능성은 SK의 기업 문화 DNA가 됐습니다. 최태원 회장의 리더십은 SK가 혁신과 책임, 그리고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미래 지향적 기업으로 변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기술 혁신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양축으로, 반도체·통신·에너지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SK하이닉스는 친환경 반도체 제조 공정을 도입하고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며, 반도체 산업 내에서 지속 가능성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은 디지털 혁신과 함께 디지털 포용 정책을 펼쳐 통신 사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으며,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수소 등 미래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집중해 친환경 기술 기반의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성과는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를 경영 지표로 명확히 설정하고 그룹 전반에 확산시킨 결과였습니다. 최태원 회장의 별의 순간은, SK가 단순히 기술 혁신에 머무르지 않고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면서도 성장할 수 있음을 세계에 입증한 데 있습니다. 이를 통해 SK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차별화된 지속 가능성 모델을 구축하고, 신뢰받는 혁신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2025-06-27 15: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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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남들이 주저할 때, 우리는 먼저 나아가야 한다"
[이코노믹데일리] 누구에게나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찰나의 선택으로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을 움직인 리더들의 결단의 순간을 돌아보며, 지금과 같은 혼돈과 위기의 시대 앞에 놓인 기업들의 생존과 도약을 위해 필요한 용기와 상상력을 다시금 떠올려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2009년, 전 세계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개인이든 기업이든 살아남는 것이 우선시되던 때였습니다. “회사가 전쟁터? 나가면 지옥”이란 명대사를 남긴 드라마 ‘미생’(2014년)은 모두가 그 시절을 겪었기에 공감을 산 걸 테지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그 같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먼저 움직였습니다. 금융 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2012년, 한화가 독일의 태양광 기업 큐셀(Q.Cells)을 인수한 것이 바로 남들이 움츠릴 때 먼저 나아가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 사례입니다. 당시 큐셀은 유럽의 경기 침체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 속에 큰 타격을 입고 있었습니다. “적자 기업을 왜 인수하느냐”는 우려가 쏟아졌지만 김 회장은 “지금이 아니면 기술도, 인재도 얻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인수를 강행했습니다. 그 결과 큐셀은 ‘한화큐셀’로 재탄생하며 독일의 태양광 기술력과 한화의 자본 및 제조 경쟁력이 결합된 글로벌 에너지 브랜드가 됐습니다. 이러한 결단은 한화 방산 부문에서도 반복됐습니다. 2015년, 그는 삼성테크윈을 포함한 삼성그룹 방위산업 계열사를 전격 인수해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방산 산업의 구조조정 시기에 그는 한화가 국가 전략 산업을 책임질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 결정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란 이름 아래 첨단 기술 방산 기업으로의 도약을 가능케 했습니다. 방산‧에너지 외에도 한화의 금융·화학·리츠(REITs) 부문까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재편, 한화자산운용과 한화생명은 아시아 및 글로벌 자산 운용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으며 한화솔루션은 에너지와 첨단 소재를 융합한 지속 가능 기업으로 변모했습니다. 선대 회장의 갑작스러운 임종으로 29세란 젊은 나이에 2대 회장으로 취임해 막중한 임무를 두 어깨에 짊어졌던 그는 불확실한 시기일수록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미래 산업과 기술에 대한 통찰을 결단이란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김승연 회장의 별의 순간은 위기를 발판 삼아 내린 일련의 ‘결단 연대기’였습니다. 올해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강조한 “남들이 주저할 때, 우리는 먼저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 경영 지침이었고, 위기에서 별의 순간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었습니다.
2025-06-17 17: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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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누구도 가지 않을 길을 가라"
[이코노믹데일리] 누구에게나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찰나의 선택으로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을 움직인 리더들의 결단의 순간을 돌아보며, 지금과 같은 혼돈과 위기의 시대 앞에 놓인 기업들의 생존과 도약을 위해 필요한 용기와 상상력을 다시금 떠올려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1980년대 초, 효성은 섬유와 화학 분야에 이름을 올린 국내 중견기업에 불과했습니다.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들이 수두룩했던 시절이다 보니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1982년 8월 1일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은 효성물산 신임 사장단 취임식에서 회장직에 취임하며 “누구도 가지 않을 길을 가라”는 경영 철학을 강조하며 기술 중심 경영을 효성그룹의 미래 비전으로 제시했습니다. 조 회장은 ‘기술로 승부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나갔습니다. 1980년대 후반, 효성이 세계 섬유 시장에서 차별화된 기술을 기반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결단내린 순간이 있었습니다. 기술 개발과 혁신에 집중하며, 효성은 섬유업계에서 고강도 섬유, 나일론, 아라미드 등 특수 섬유 제품을 개발해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효성은 단순한 생산기업에서 기술 기반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술력 확보를 위해 연구소 설립, 해외 연구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품질 경쟁력도 강화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효성은 세계 최고의 아라미드 섬유 생산업체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며 방탄복, 자동차 부품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진출하게 되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1990년대 후반, 조 회장은 화학 사업에 집중하며 효성의 포트폴리오 다양화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수익성이 큰 화학소재 산업에 진출해 스판덱스와 같은 섬유 소재 글로벌시장 점유율을 급격히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 도전과 혁신을 추구했습니다. 그 결과 조 회장은 한국 섬유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섬유업계 거인’으로 평가받게 됐습니다. 섬유 소재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에 들어가는 타이어코드 등 4개 제품을 세계 1위로 키운 그에게 걸맞는 수식어였습니다. 조 회장이 평생 소신인 “효성은 기술로 미래를 만든다”는 목표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시점은 2016년 11월 3일, 효성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조 회장은 효성의 미래 비전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100년 기업’을 제시하며 다시 한번 기술 혁신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강조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81세였습니다. 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조 회장은 1982년부터 2017년까지 35년간 효성그룹을 이끌었으며 2007~2011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아 재계 구심점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조석래 회장의 별의 순간은 효성을 독자적 기술 혁신과 글로벌시장 경쟁력을 바탕으로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시점이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효성은 이제 섬유, 화학, 에너지, 전자기기까지 아우르는 글로벌기업으로 자리 잡았고, 길이 아닌 길을 걸으며 개척해내는 기술 기반 경영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2025-06-10 17: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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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화 구본무 회장 "LG는 혁신기업이다"
[이코노믹데일리] 누구에게나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찰나의 선택으로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을 움직인 리더들의 결단의 순간을 돌아보며, 지금과 같은 혼돈과 위기의 시대 앞에 놓인 기업들의 생존과 도약을 위해 필요한 용기와 상상력을 다시금 떠올려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1997년 3월 27일, LG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구본무 당시 구조조정본부장은 “LG는 혁신기업이다”란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며 중장기 성장 전략인 ‘도약 2005’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그는 LG전자 부회장으로서 그룹 경영의 실질적인 중심에 있었으며, 이 발표는 곧 그룹의 새로운 방향을 정하는 선언이자 도전장이었습니다. 이는 명목상으로는 아직 회장이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그룹의 미래 전략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처럼 과감한 비전을 제시한 배경에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은 글로벌 시장이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으로 급변하던 시기로, 국내외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산업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었습니다. 구본무 회장은 “과거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을 강하게 느꼈으며, LG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술과 조직, 전략 전반에 걸친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도약 2005’는 단순한 구호가 아닌, LG의 체질을 바꾸는 실천 전략이었습니다. 그는 고객 중심의 가치 창출, 글로벌 시장 확대, 기술 기반 경영, 조직문화 혁신 등을 구체적인 실행 과제로 제시했으며, 이듬해인 1998년 3월, LG그룹 회장으로 공식 취임하며 이 비전의 실현을 본격화했습니다. 특히 그는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제품 성능만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그는 디자인 경영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LG 디자인’을 브랜드 정체성으로 삼고, 감각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통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 전략은 LG가 단순한 전자제품 제조사를 넘어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또한 구본무 회장은 기술 혁신에도 아낌 없는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디스플레이, 휴대폰, 가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차세대 기술 개발을 주도했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LCD TV와 플라즈마 TV 등 혁신적인 제품들을 통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LG전자는 그의 리더십 아래 세계적인 전자 브랜드로 성장하게 됐고요. 그의 가장 빛나는 ‘별의 순간’은 단연 LG전자를 세계 3위의 휴대폰 제조업체로 성장시킨 시기였습니다. 그는 ‘휴대폰의 혁신’을 위해 차별화된 디자인과 첨단 기능을 탑재한 슬라이드폰, 터치스크린폰 등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LG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급격히 상승했고, 기술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제품들은 세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고(故) 구본무 회장의 리더십은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해 LG를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시켰으며, 고객 중심의 혁신 철학을 기반으로 LG그룹을 재정의했지요.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미래를 준비한 그의 결단과 실행력은 한국 산업계에서 하나의 전범(典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별의 순간들은 지금도 LG 정체성과 자산으로 빛나고 있다고 해야 겠지요.
2025-06-02 13: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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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화 정몽구 회장 "품질은 현장에서 나온다"
[이코노믹데일리] 누구에게나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찰나의 선택으로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을 움직인 리더들의 결단의 순간을 돌아보며, 지금과 같은 혼돈과 위기의 시대 앞에 놓인 기업들의 생존과 도약을 위해 필요한 용기와 상상력을 다시금 떠올려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지금은 전 세계에서 한국 자동차의 대명사가 된 현대차. 20여년 전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된 현대차는 2000년대 초반까지 그저 ‘가성비 좋은 차’ 정도로 알려졌을 뿐 브랜드 신뢰도는 낮았습니다. 특히 ‘자동차 대량 생산의 원조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자녀가 운전면허 따면 사주는 첫 차, 딱 그 정도가 현대차의 위상이었지요.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물 수 없다는 절박감 속에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 것이 2001년 1월 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열린 시무식에서였습니다. 당시 취임 4년째를 맞은 정몽구 회장은 “작은 성공에 도취돼 있을 때가 아니다”라며 현대차의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선언했습니다. “자동차는 곧 품질이다. 그리고 품질은 책상이 아니라 공장에서 나온다.”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2남으로 태어난 정 회장은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생산 관리자를 거쳐 경영자가 됐기에 누구보다 현장의 중요성을 잘 알 수밖에 없었겠지요. 품질 경영을 선포한 그는 이후 정기적으로 공장을 직접 찾았습니다. 국내 공장은 물론 터키·인도·체코·미국의 생산 현장까지 돌며 불량률, 조립 공정, 클레임 데이터를 직접 챙겼습니다. 임원에게 보고받지 않고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리더십은 ‘정몽구식 경영’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리고 2003년. 그는 ‘글로벌 5위 완성차’를 목표로 내걸고 국내 최초로 '10년·10만 마일 무상보증 제도'를 미국 시장에 도입합니다. 품질에 자신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도박에 가까운 도전이었습니다. 그 결과 2004년 현대차는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자 소비자조사인 JD파워 신차품질조사(IQS)에서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품질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 같은 성과는 “현대차는 진짜 품질이 좋은 차”로 미국과 유럽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습니다. 이는 단순히 좋은 차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 산업 자존심, 정몽구 개인 리더십의 승리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품질 경영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고객 신뢰를 얻는 것이 기업 경쟁력의 출발점”이란 신념이자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한 의식 개혁이었습니다. 현대차는 이후 제네시스 브랜드 론칭, 고급차 시장 진입, 글로벌 점유율 확대 등으로 이어졌고, 이는 모두 2004년의 '품질 반전' 성공이 기반이 됐습니다. 지금은 아들인 정의선 회장에게 직을 물려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정몽구 회장의 별의 순간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대신 “세계에서 통하려면 세계 최고 품질이어야 한다”는 집념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기 시작한, 그 시간들이었습니다.
2025-05-26 16: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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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화 이건희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
누구에게나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찰나의 선택으로 시대를 바꾸었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을 움직인 리더들의 결단의 순간을 돌아보며, 지금과 같은 혼돈과 위기의 시대 앞에 놓인 기업들의 생존과 도약을 위해 필요한 용기와 상상력을 다시금 떠올려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이코노믹데일리]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 회의실. 삼성그룹 임원 2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폭탄 선언을 합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그의 단호한 목소리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삼성은 국내 1위 기업이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존재감이 미미한 시절이었습니다. 품질은 낮고, 조직은 느리며, 관료주의가 만연했습니다. 이 회장은 "이대로는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에 이렇게 '신경영'을 선포했습니다. 신경영은 전면적인 체질 개선이었습니다. 품질을 핵심 가치로 삼고, 불량률 0.01%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디자인 혁신, 고객 중심 사고, 글로벌 인재 양성 등 기업 문화 전체가 변화의 대상이었지요. 과감한 인사 개편으로 연공서열을 깨고, 젊고 능력 있는 인재를 전진 배치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후 정말 '미친 듯이' 품질에 집착했습니다. 불량 핸드폰 15만대를 직원들 앞에서 불태운 ‘애니콜 화형식’은 그러한 집착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이 회장의 리더십은 ‘기술보다 품질, 규모보다 가치’란 메시지를 조직에 뿌리내리게 했지요. 그로부터 10년. 삼성전자는 세계 TV 시장 1위에 올랐고 반도체·휴대폰에서도 글로벌 톱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신경영’은 단지 혁신 캠페인이 아닌, 삼성을 초일류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DNA가 됐습니다. 그 당시 외국에 나가본 한국인이라면 해외에서 삼성 로고를 볼 때 마치 '경제 국가대표'를 보는 기분이었지요. 다시 그로부터 20년. 이 회장의 뒤를 이은지 11년째 아들 이재용 회장은 지난 3월 임원들에게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고 질책하며 '사즉생(死即生)'의 위기 대처를 주문했습니다. 최근의 삼성전자는 주요 사업 부문 뿐만 아니라 미래 사업 부진으로 그간 삼성의 대명사였던 초격차·초일류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근본 경쟁력이 위협받는 상황입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별의 순간은 현실을 직시하고 그 누구보다 먼저 변화의 칼날을 들이댄 결단이었습니다. 지금 이재용 회장이 '삼성다움'으로의 복원을 요청하며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세째도 기술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선대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저만일까요? 삼성이 우리 기업의 국가대표이던 시절이 저도 그립습니다.
2025-05-19 10: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