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는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 세대는 새로운 소비권력으로 트렌드를 주도하고, 가치 소비를 추구하며, 남들 다 따르는 유행보다는 나만의 색다른 경험을 중시한다. 글보다는 영상을 선호하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변화에 민감하다.
MZ세대는 유례없는 코로나팬데믹 속에서 언택트 문화와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이라는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으며, 오랜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있기도 하다. 기성세대가 ‘훗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감내했다면 MZ세대는 최선의 상태를 얼마나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둔다. 즉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MZ세대가 코로나19 이후 고가 명품시장의 핵심 고객으로 떠오른 데는 이러한 배경도 작용한 듯하다. 코로나19로 억눌린 오프라인 소비가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일어난 럭셔리 소비 패턴의 변화를 MZ세대들이 이끌고 있다.
◆ 명품시장 큰 손으로 떠오른 MZ세대
지난해 명품 시장의 큰 손은 20~30대였다. 주요 백화점 명품 매장의 매출 절반가량을 소위 MZ세대가 책임졌다.
신세계백화점의 지난해 명품 매출에서 20대와 30대 구매 비중은 각각 10.9%와 39.8%로 집계됐다. 롯데백화점에서도 젊은층의 명품 매출 비중이 2018년 38.1%, 2019년 41%, 2020년 46% 등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현대백화점의 경우에도 지난해 명품 매출 증가율이 20대에서 37.7%로 가장 높았고 30대(28.1%)와 40대(24.3%)가 뒤를 이었다.
특히 ‘럭비남’(럭셔리 상품을 사는 30대 비혼 남성)은 가족보다는 자신을 위해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과감히 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1~3월 명품을 구매한 남성 고객 매출 중 20~30대 비중이 43.2%를 차지했다. 롯데백화점의 명품 편집숍 '탑스'(TOPS)의 20~30대 남성 고객 매출도 전년 대비 60% 가까이 신장했다.
MZ세대는 명품백 대신 고급 스니커즈를 모은다. 한정판 스니커즈는 명품백, 명품 의류보다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으면서도 나를 과시하는 가치소비가 가능한 품목이기 때문이다.
MZ세대에게 스니커즈 리셀은 신종 재테크 수단이기도 하다. 연간 20조원인 리셀 시장에서 스니커즈 리셀 시장 규모는 약 5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도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한정판 스니커즈를 전시하고 재판매하는 매장인 '브그즈트랩'이 들어섰다. 온라인으로만 보던 고가의 스니커즈를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는 공간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매주 주말이면 대기번호가 100번대 이상 이어진다. 국내외 사이트를 참고해 시세를 반영한 뒤 일주일 단위로 변동되는데, 판매가가 7000만원까지 치솟은 '나이키 덩크SB 로우 스테이플 NYC 피죤'이 나와 눈길을 사로잡았다.
롯데백화점도 지난해 12월 재개장한 영등포점에 한정판 스니커즈 오프라인 거래소인 '아웃오브스탁'을 선보였다.
이렇듯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는 명품 의류나 잡화를 사서 경험해 본 뒤 중고 시장에 팔고, 여기에 다시 돈을 보태 새로운 명품을 사는 패턴이 익숙하다.
스니커즈 뿐 아니라 구찌, 루이비통, 에르메스, 샤넬도 MZ세대가 눈독을 들이는 명품 브랜드들이다. 매일 ‘오픈런(오픈 전부터 매장 앞에서 대기)’ ‘퇴근런’(퇴근길에 들르기)을 찍고, 주말마다 명품 매장 앞 대기줄을 차지하고 선 MZ세대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명품을 착장한 자신의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 필수다. 유명 유튜버의 명품 언박싱이나 하울(Haul‧후기 및 품평) 영상을 감상이 수백만 조회 수를 찍고, 명품의상을 입은 아바타가 등장하는 가상현실 게임에 열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2월 ‘사람인’에서 진행한 ‘플렉스 소비문화’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의 52.1%가 플렉스 소비에 대해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자기 과시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있긴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가치에 투자를 하는 셈이다.
◆명품 '플렉스' 소비 부추기는 기업마케팅
한편으로는 각종 기업과 브랜드들이 오히려 MZ세대들에게 명품 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유통업계는 지난해부터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오프라인 매장 리모델링을 진행했고, 트렌디한 명품 브랜드를 대거 입점 시켰다. 일례로 MZ세대 '신명품'으로 떠오른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아미'가 백화점에 등장했다. 요즘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에 가보면 생소한 외국 명품 브랜드들이 편집샵이나 스트리트 패션으로 가득 들어섰다.
또 온라인 명품 판매 플랫폼의 등장은 심리적인 문턱을 낮추면서 명품 구매가 점점 대중화‧일상화되고 있다.
‘트렌비’, ‘머스트잇’, ‘발란’ 등의 명품 거래 플램폼들이 등장했고, 소소하게 마음을 나누던 ‘카카오톡 선물하기’에도 명품 브랜드가 대거 포진했다. 네이버도 신세계그룹과 협력해 패션과 뷰티 카테고리의 온라인 명품관을 구성한다고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면세점의 명품 매출이 쪼그라들자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판로를 찾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MZ세대들의 명품 소비에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선망하는 아이돌 그룹이나 연예인이 나오는 웹드라마, 유투버들을 통해 명품이 지속 노출되며 이를 시청하는 MZ세대들이 명품 소비에 눈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X세대, Y세대, 밀레니엄 세대, Z세대까지 그동안 세대에 대한 많은 담론이 있어 왔다. 그리고 그 세대들마다 유행하던 필수 아이템이 꼭 있었다. 10년 전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이라면 꼭 입어야 했던 ‘등골 브레이커’로 이름난 노스페이스 패딩 점퍼, 지금은 생소한 이름의 외국 유명브랜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플렉스' 문화가 10-20대를 사로잡으며 요즘 ‘등골 브레이커’는 등골만 휘게 하는 게 아니다. 아르바이트로 명품을 구입했다는 10-20대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은 부모의 재력으로 구입한 제품들이다.
국내 S사 최신폰을 가진 10대 초입의 딸이 ‘친구들이 놀린다’며 사과가 그려진 최신폰을 사달라고 떼쓰며 울 때, 화를 내야 할지 달래야 할지 무척 당황스러웠다. ‘다른 친구들은 다 있다는데 아이가 주눅 들지 않을지’, 그렇다고 선뜻 사주기에는 교육적으로 잘못됐다는 생각에 나 역시 갈팡질팡해야 했다.
MZ세대의 또 다른 이름은 ‘N포 세대’다. 취업난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빈부격차, 경쟁사회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세대에게 ‘플렉스’ 욕구는 자존감을 찾고 싶은 우울한 초상이자 세찬 몸부림인 것은 아닐까. 이들의 웃픈 현실을 세대담론으로 포장하고 ‘플렉스’ 소비를 부추기는 기업들의 상술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