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의 시장 점유율은 60%에 육박한다. 지난 4월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의 매출 기준 시장 점유율은 53%로, 올해는 56%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작년 시장 점유율 2위(18%)로 격차를 벌렸다. 3위에 오른 UMC도 대만 기업으로 삼성전자가 낀 형국이다. 4위인 글로벌파운드리(GF)는 중국 기업이다.
OSAT 분야도 대만이 강세다. 시장조사업체 욜 디벨롭먼트 등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매출액 기준으로 대만 OSAT 기업인 ASE의 시장 점유율은 42%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은 미국 앰코(13%)의 세 배 넘는 규모다. 특히 상위 10개 기업 중 대만 국적 기업은 6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시장의 반도체 육성 전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대만은 '첫 단추'를 잘 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찌감치 미국과 유럽 등 해외 국가의 반도체 생산 수요를 그대로 흡수하면서 반도체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좋은 조건으로 우수 인재들을 확보해 첨단 기술의 근간인 맨파워를 보유했다. 적극적인 정부 정책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팹리스(반도체 설계)-파운드리-OSAT로 이어지는 반도체 생태계를 구성한 것이 효과를 냈다. TSMC가 반도체를 생산하면 ASE에 패키징을 맡기는 식으로 대만 기업 간 협력을 통해 자연스레 반도체 산업이 굴러가게 한 것이다. 파운드리와 팹리스 등 기술 산업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이 별도로 움직이는 한국 상황과 상반된 모습이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반도체 기술은 소부장과 동반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는 만큼 소부장 생태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라며 "소부장 산업을 영유하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한국에 투자하는 대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등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대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을 늘리고 있는 만큼 중소·중견기업들도 세계 시장 진출 규모를 늘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인재 확보 전쟁에 대비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 계획이 늦어진 데다 반도체 기술 경쟁이 격화될수록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미국에서만 2025년까지 반도체 인력이 최대 9만명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반도체 기술 구인 사례가 2012년 대비 10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면 대만처럼 종합 솔루션 성격의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소·중견 제조업체의 제품 수요와 공급 니즈가 집결하는 플랫폼을 통해 시장 확대를 촉진할 수 있다"라며 "정부 차원의 사업 기술 관련 인프라 공급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