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오는 14일 그룹 총수직에 오른 지 2주년을 맞는다. 정 회장은 취임 후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우뚝 서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정 회장은 특히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 기아 'EV6' 등 전용 전기차가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전동화 분야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또 도심항공 모빌리티(UAM), 로보틱스, 커넥티비티,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미래 신기술 개발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인한 미국 판매 위기와 수년째 부진에 빠져있는 중국 시장 회복은 정 회장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들어 명실상부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 올라섰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25만2719대를 판매하며 전 세계 전기차 판매 5위권에 진입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도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한 아이오닉 5와 EV6 판매 호조로 테슬라에 이어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아이오닉 5는 올해 '2022 월드카 어워즈(WCA)'에서 세계 올해의 차(WCOTY)를 비롯해 세계 올해의 전기차, 세계 올해의 자동차 디자인 등을 휩쓸었다. 기아 EV6도 '2022 유럽 올해의 차(Europe Car of the Year)'를 수상했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3대 '올해의 차' 가운데 2개를 석권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총 307만대 전기차를 판매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점유율 12%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현대차는 이를 위해 2025년 상반기까지 울산 공장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기아는 오토랜드 화성에 연간 최대 15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 신개념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Purpose Built Vehicle) 전기차 전용공장을 신설한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뿐만 아니라 올해 자동차 판매량 기준으로 사상 첫 글로벌 '빅3'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1~6월)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329만9000대를 판매했다. 토요타그룹(513만8000대)과 폭스바겐그룹(400만6000대)을 따라잡기 직전이다.
정 회장 취임 후 실적도 눈부시다. 현대차 매출은 2020년 103조9976억원, 영업이익 2조3946억원에서 지난해에는 매출 117조6106억원, 영업이익 6조6789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 역시 2.3%에서 5.7%로 두 배 넘게 올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전기차, 제네시스처럼 고부가가치 차량이 판매 실적을 이끌었다"며 "내년에도 글로벌 빅3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취임 일성이었던 종합 모빌리티 기업 도약을 위한 계획들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정 회장은 2년 전 취임사를 통해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자동차를 넘어 미래 '이동 수단'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정 회장은 계획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6월 취임 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으로 로보틱스 분야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4족 보행로봇 '스팟'과 2족 직립보행이 가능한 '아틀라스' 등을 개발했다. 현대차는 이를 통해 차세대 로봇의 근간이 될 기반 기술 확보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2020년에는 미국 자율주행 기술기업 앱티브(Aptiv)와의 자율주행 합작법인인 '모셔널(Motional)'을 설립했다. 모셔널은 지난해 8월 아이오닉 5를 기반으로 한 로보택시를 세계최초로 공개했다.
아이오닉 5 로보택시는 모셔널의 첫 상업용 완전 무인 자율주행 차량이다. 내년 미국에서 승객을 원하는 지점까지 이동시켜주는 라이드 헤일링(ride-hailing)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및 모빌리티 플랫폼 스타트업인 포티투닷 인수 등을 준비 중이다. 포티투닷은 지난달 서울 청계천에서 자율주행(aDRT) 셔틀을 시범 운행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영국 판버러 에어쇼에 참가한 정 회장은 영국의 롤스로이스와 프랑스의 사프란 등과 함께 공동연구 개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UAM 분야 선점을 위한 글로벌 협력도 강화했다.
이 밖에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KT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KT와 자율주행 기술, 위성통신 기반 AAM(Advanced Air Mobility·미래 항공 모빌리티) 통신망 선행 공동연구 등을 포함해 차세대 통신 인프라와 ICT 분야에서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협력을 추진한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법.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위상을 끌어올린 것에 비례해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당면한 문제는 미국의 IRA 시행이다.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세액공제 형태로 지급하도록 규정한 법이다. 한국에서 아이오닉 5, EV6 등 전기차를 조립해 판매하는 현대차그룹의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정 회장이 55억 달러 규모의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 건설과 함께 50억 달러의 대미 추가 투자를 약속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화답은커녕 IRA라는 불똥을 던진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 8월 말과 9월 말에 연이어 미국 출장길에 올라 IRA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IRA와 관련된 윤 대통령의 우려에 대해 잘 알고, 한미간 솔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협의를 지속하겠다"고 말하는 등 IRA 개정과 관련된 긍정적인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다. 현대차도 예정대로 이달 중 미국 조지아주(州) 전기차 공장 착공식을 갖고 공식적으로 공사를 시작한다. IRA 개정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수년째 지지부진한 중국 시장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드는 것도 정 회장 앞에 놓인 과제다. 현재 베이징현대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대에 불과하다.
올해 상반기 중국 시장 판매량은 9만4158대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9만4085대)에 비해 52% 하락한 수치다. 베이징현대는 현대차 해외 시장 가운데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법인이다.
정 회장은 '프리미엄' 전략으로 판을 바꾸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중국 업체들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가성비 브랜드로서 포지셔닝은 의미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4월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중국에 출범시켰다. 최근 베이징 최대 번화가 왕푸징 인근 대형 쇼핑센터에 도심형 전시장을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울러 현대차는 전기차를 앞세워 중국 판매량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또한 현대차와 베이징차는 합작법인 베이징현대 증자에 올해 60억 위안(약 1조2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현대차그룹이 크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성과에 도취될 시점은 아니다. 세계 경제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정 회장이 IRA 위기 극복, 중국 시장 회복 등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