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커피믹스 제왕’ 동서식품이 캡슐커피 시장에 뛰어들면서 점유율 구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맥심’으로 30년 넘게 1위를 지켜온 동서식품의 믹스커피 시장 점유율은 무려 89%에 이른다. 탄탄한 수요와 매니아 고객층이 구축돼있는 만큼 ‘글로벌 식품 공룡’ 네슬레가 장악한 국내 캡슐커피 시장의 판을 뒤집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동서식품은 최근 몇 년간 홈카페 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캡슐커피 시장이 지속 성장하는 것에 주목했다. 캡슐커피 시장은 코로나19 기간 급격한 성장세를 이뤘다. 또 고물가의 영향으로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커피값을 인상하자 캡슐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들고 다니는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판매량이 늘었다.
1인가구,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를 중심으로 캡슐커피 수요가 높은 만큼 관련 시장의 성장세도 두드러지고 있다. 업계는 동서식품이 국내 커피 시장 내 입지를 공고히 한 만큼 캡슐커피 시장도 빠르게 안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50여년 커피 제조 노하우 담았다”…동서식품, ‘카누 바리스타’로 승부수
동서식품은 지난 14일 ‘카누 바리스타’ 캡슐커피 8종과 전용 머신 5종, 네스프레소 호환 캡슐 6종 등 새로운 캡슐커피 라인업을 선보였다. 캡슐커피 시장에 진출해 제품과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실적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국내 캡슐커피 시장 규모를 연간 4000억원(2022년 기준) 수준으로 보고 있다.
동서식품이 캡슐커피 시장에 뛰어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 독일의 가전기기 회사인 보쉬와 크래프트(현 몬델리즈)의 협력을 통해 ‘타시모’를 국내에 선보인 바 있다. 보쉬가 기기의 제조·유통을 담당하고 크래프트와 동서식품이 티디스크의 제조, 유통을 각각 담당했다. 당시 배우 이나영을 모델로 발탁하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지만 타시모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던 데다 기존 캡슐커피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네슬레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캡슐커피 보급률이 낮았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1%에 불과했던 가정용 캡슐 커피 머신 보급률은 지난해 10% 안팎을 기록한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반면 동서식품이 주력으로 삼는 믹스커피(조제커피) 시장 규모는 줄고 있다.
한국농식품유통공사의 식품 산업 통계를 보면 조제커피는 지난 2018년 8500억원 규모의 시장을 이루며 국내 커피 시장의 33% 정도를 차지했으나, 2019년 7980억원(30.3%), 2020년 7460억원(27.5%)으로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다. 조제커피에 함유된 설탕 등 첨가물에 대한 소비자의 비선호 경향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동서식품의 매출은 10년 넘게 약 1조5000억원대에 머물러 있다. 믹스커피 매출 감소를 카누와 시리얼 등이 방어해왔지만 새로운 성장 기반이 필요했고, 주력 사업과 연관된 캡슐커피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국내 캡슐커피 시장은 네슬레가 ‘네스프레소’,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등을 앞세워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외 폴바셋, 이디야커피, 할리스, 드롭탑, 카페베네 등도 진출해있지만 영향력은 미미하다. 이에 네슬레 제품을 구입한 이들에게 카누 캡슐을 판매하지 않으면 네슬레의 아성을 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동서식품은 캡슐커피 재도전에 앞서 소비자 동향 파악을 위한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회사는 “소비자들은 시중 캡슐커피 양이 부족해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캡슐커피 2개를 추출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캡슐커피 사용자 10명 중 7명은 별도의 물을 추가하기 위해 번거로운 추사 버튼 조작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동서식품은 후발주자로 나선 만큼 경쟁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전용 캡슐커피의 용량을 시중 대비 약 1.7배 늘린 9.5g의 원두를 담았다. 또 캡슐커피의 핵심인 커피를 추출하는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해 특허받은 ‘트라이앵글 탬핑’ 기법을 적용했다. 탬핑 기법은 커피 추출 전 원두를 평평하게 다져 항상 같은 맛을 낼 수 있도록 한 동서식품의 특허 기술이다. 이를 통해 카페에서 판매하는 아메리카노 수준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동서식품의 설명이다.
커피 머신의 디자인도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인 벤자민 휴버트에게 의뢰해 집 또는 사무실 등 어디에나 어울릴 수 있는 정갈한 형태로 제작했다. 벤자민 휴버트는 고급 오디오 브랜드 뱅앤올룹순, 일본 가전 파나소닉, 중국 전기차 기업 니오 제품 등을 디자인해 유명해진 산업디자이너다.
향후 카누 바리스타 캡슐커피 머신의 판매량이 늘고 소비자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다양한 커피 맛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 “우리도 커피 시장 진출”…생활가전 업체 ‘청호나이스·웰스’ 가세
집에서 커피를 즐기는 ‘홈카페’ 열풍이 강해지면서 생활가전 기업들도 커피 시장에 잇달아 뛰어들고 있다. 그 중 청호나이스가 지난 2021년 말 커피 사업부문을 신설하는 등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다. 2014년부터 판매해온 커피머신 ‘에스프레카페’ 판매를 대대적으로 촉진하기 위해서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에스프레카페는 청호나이스의 기존 커피머신 정수기 제품을 리뉴얼 한 제품이다. 커피머신의 기능과 정수기의 기능을 결합해 커피 추출은 물론 정수, 냉수, 온수, 미온수에 얼음까지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에스프레카페의 누적 판매량은 16만대에 이른다. 청호나이스는 커피 맛을 공들이기 위해 원두분말의 산화를 막은 3중겹 구조로 제작된 에스프레카페 전용 캡슐을 도입하기도 했다.
교원그룹의 생활가전 브랜드 웰스의 ‘웰스더원 홈카페’ 커피머신도 인기몰이 중이다. 네스프레소(커피)와 메디프레소(차) 캡슐을 활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정수기와 직접 연결해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