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폭스바겐 골프는 비틀과 함께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 중 하나다. 1976년 이후 콤팩트 스포츠카의 대중화를 이루면서 빠른 해치백이라는 '핫해치' 세그먼트(차종)를 개척한 모델이기도 하다. 해치백의 무덤인 국내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았고 47년간 글로벌 판매량은 3500만대를 돌파했다.
폭스바겐이 지난해 초 출시한 8세대 골프는 완전변경 모델로 새로운 내·외관 디자인과 개선된 파워트레인(구동계통), 첨단운전보조장치(ADAS)를 기본 탑재했다. 스포츠 모델로 넘어가는 상위 라인업인 GTI는 지난해 12월 출시했다.
◆성능은 명불허전...디자인은 정체성 계승
기자는 지난달 30일부터 31일까지 1박 2일 간 서울 여의도에서 일산, 파주로 이어지는 구간 약 200km를 8세대 골프 GTI와 함께 달렸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무게 배분과 출력 조화로 가속은 신속하게 이뤄졌으며, 시원한 배기음과 함께 초고속에 도달한 뒤 안정감에서도 수십년간의 노하우를 엿볼 수 있었다. 잘 달리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자동차라는 점이 충분히 느껴졌다.
8세대 골프 GTI는 전통적인 골프 정체성을 계승하면서도 세부적인 요소에 신경을 썼다. 기존 대비 공기역학적 성능 개선을 위해 차체가 유선형으로 빠졌다. 전면부에는 헤드램프(전조등)와 그릴을 이어주는 LED 미등이 더해졌고, GTI 모델 헤드램프 눈매 끝에는 'IQ.매트릭스 헤드램프'가 적용돼 44개 LED로 맞은편 운전자 눈이 부시지 않도록 지능적으로 상향등을 조절해준다. 방향지시등도 부드럽게 물결치는 시퀀셜 타입으로 세련미가 돋보였다.
일반형(GDI)과 GTI 모델은 지난 세대에서 크게 바뀌지도 않았고 제원상으로도 큰 차이가 없다. 전장(길이) 4290mm에 전고(높이) 1790mm, 축거(휠 베이스) 1445mm로 폭스바겐 특유의 면(面)과 선(線)을 강조한 외관이다. 브랜드 정체성을 담당하는 모델답게 이상적인 차체 비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GTI는 일반형 대비 지상고가 15mm 낮고 휠하우스(바퀴 바깥쪽 공간)를 가득 채우는 19인치 전용 휠과 타이어가 장착됐다는 차이가 있다. 상징성이 있는 빨간색 줄도 차량 곳곳에 배치됐다. 전면부 범퍼에는 육각형 그릴 장식이, 측면에는 'GTI' 배지가 달렸다. 후면부도 차량 레터링, 루프 스포일러에 검정색 처리가 더해졌다. 빨간색 브레이크 캘리퍼와 후면부 두 개 머플러도 일반형과 달리 차량 성격을 잘 드러낸 점이다.
실내 역시 브랜드 특유의 정갈하고 깔끔한 기조 가운데 GTI 디자인 요소가 차있다. 10.25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10인치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는 운전자 중심으로 배치돼 주행 중 정보를 살펴보기 편했다. 폭스바겐 디지털 계기판은 주행 관련 정보나 미디어 재생 정보, 지도와 내비게이션 방향까지 보이도록 개인화 할 수 있다.
8세대 골프 모든 트림에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적용돼 편리성이 극대화됐다. 무엇보다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가 무선으로 지원된다는 점이 편리했다. 또한 실내 물리적 버튼이 터치 패널로 대체돼 주행 중 조작성에는 감점 요소가 있었지만 겉으로는 고급스러워 만족스러웠다.
기어노브는 폭스바겐 그룹사인 포르쉐 차량이 연상되는 모습으로 변했고 공조장치 온도 조절과 썬루프 조작도 터치식에 슬라이드 및 제스처까지 지원했다. 스티어링 휠(운전대)에도 버튼 없이 햅틱 모터가 탑재돼 조작 시에만 진동이 울렸다.
2열에도 에어컨 배기구가 위치해 있어 뒷좌석 온도를 따로 관리할 수도 있다. 2열이 좁다고 느껴질 수 있었지만 해치백 치고는 차량 전반적 공간감이 여유로웠다.
GTI는 시트 디자인과 구성에서도 일반형과 차이가 있다. 국내 소비자 취향에 맞도록 1열은 열선과 통풍 기능을 지원하고 '사이드 레터럴 서포트'가 잘 적용돼 허리와 허벅지 부분까지 잘 잡아줬다.
반면 일반형에 들어갔던 안마 기능은 빠졌고 조수석은 여전히 '돌돌이'라 불리는 수동 시트가 적용됐다. 트렁크 공간도 지난 세대와 큰 차이가 없는 374리터(L)지만 2열을 접으면 1230L까지 확장이 가능했다.
◆안정적 가속감에 힘 넘치는 엔진...합리적 가격대까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을 때는 기대한 만큼 강렬한 배기음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퍼포먼스를 강조한 모델보다는 일상용 디젤 세단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8세대 골프 GTI에는 최고출력 245마력과 최대토크 37.8kgf·m를 발휘하는 4기통 2.0L 터보 엔진이 탑재됐다.
폭스바겐은 듀얼 클러치(DSG) 변속기를 오랫동안 적용한 브랜드답게 저속에서 울컥거릴 수 있는 느낌을 오히려 기분 좋게 다듬었다. 가속과 감속이 변칙적으로 일어나는 주행 중에도 기어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철컥 하는 진동만 잠깐 느껴졌다. 엔진 반응은 가볍게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에도 즉각 느껴질 만큼 민첩했다. 가속감은 주행 모드가 '컴포트'에 맞춰져 있을 때와 낮은 엔진회전속도(RPM)를 유지할 때에도 여유있었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자 GTI의 질주본능이 깨어났다. 스티어링 휠은 더 묵직해졌고 변속기 움직임은 재빨랐다. RPM은 상시 2000 이상을 유지하면서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 태세를 마친 것처럼 느껴졌다. 가속 페달에 발만 올려둬도 더 큰 힘을 내기 위한 엔진음이 이어졌다. 한 번 스포츠 모드를 적용하니 컴포트나 에코 모드로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8세대 골프 GTI의 엔진 힘은 비슷한 출력을 가진 다른 차와 비교했을 때도 우위에 있었다. 이는 해치백이라는 가벼운 특성 탓도 있겠지만 일정하고 안정적으로 오르는 가속 성능 때문이었다. 시속 170km 이상 초고속 영역에 진입하더라도 엔진 반응과 가속감(토크감)이 고르게 느껴졌다. 직선 고속도로가 많은 독일의 콤팩트 스포츠카답게 직진 주행성이 뛰어남을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가속 페달을 강하게 누르는 소위 '풀악셀' 상태에서는 몸이 젖혀질 정도로 뛰어난 가속 성능도 자랑했다.
일반형 대비 커진 휠 사이즈도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고속 주행 시 코너 구간에서의 타이어 접지력(지면을 붙잡는 힘)은 중요하다. 폭스바겐에 따르면 빠른 속도로 코너링 시 접지력이 약한 전륜구동 차량의 특성을 극복한 주행 보조 장치(전자식 주행 안정화 컨트롤, 어댑티브 섀시 컨트롤)도 적용했다고 한다. 여러 요소를 조합해 고속 영역에서도 안정감을 제공했다. 다만 휠하우스 공간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방지턱을 시속 30km 이상으로 넘을 때에는 다른 일상용 차보다 충격이 컸다.
여기에 8세대 골프 GTI에는 2023년에 걸맞은 최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도 탑재됐다. 폭스바겐이 개발한 'IQ.드라이브'는 정차 상태부터 시속 210km까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지원한다. 시속 60km부터 켜지는 차로 이탈 및 보조기능, 주차 보조 시스템인 '파크 어시스트'도 유용했다. 전후방 레이더 센서와 초음파 센서를 활용한 충돌 방지, 경고 기능도 잘 동작했다.
8세대 골프 GTI의 복합 기준 공인 연비는 리터(L)당 11.5km 수준이다. 주로 스포츠 모드에 두고 급가속과 급감속을 반복한 시승을 마치자 트립 컴퓨터에는 주행거리 211km, 리터당 9.1km 연비가 계산돼 있었다. 컴포트나 에코 모드로 항속 주행 위주로 하면 리터당 15km까지도 가능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주행 즐거움에 목적이 있는 콤팩트 스포츠카로서는 일상용 차와 큰 연비 차이가 없는 점도 매력적이다.
출력이 넘치는 차들이 많아졌지만 골프 GTI는 운전 숙련도를 떠나 쉽고 편하게 스포츠카 수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유전자를 가졌다는 점에서 여전히 '서민의 포르쉐'임을 자처하고 있다.
다만 전기자동차(EV)가 나오면서 마력이나 토크 등 의미가 없어졌다고들 한다. 내연기관차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도 한다. 8세대 골프 GTI를 시승하고 나니 이런 세태가 아쉬울뿐이다.
한편 8세대 골프 GTI의 국내 판매 가격은 4590만원이다.